쓰던 진지한 글들 다 내버려두고, 광고 한 줄 없는 개인적인 블로그 걸맞게 가볍게 쓰는 일기...였는데 진지해졌다. 초반부와 후반부 글이 너무 달라져서 결국 찢기로 했다.
때때로 삶에는 원하지 않는 변수가 끼어든다. 빨래방에서 빨래를 가지고 오는 길, 지갑을 챙겨왔는데도 안에 (집 열쇠 기능이 있는)학생증을 넣지 않은 바람에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플랫메이트들에게 연락했지만 모두들 밖에서 불타는 토요일을 보내고 있었다. 다 젖은 빨래더미 옆에서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이 같이 교환학생을 온 윗층 친구네 집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냐? 우리집 플랫메이트들이 돌아올 동안 민폐를 끼치며 구석에서 빨래와 함께 쭈그려 있었나? 그랬을리가. 그쪽 집의 플랫메이트가 내 친구가 같이 영화를 보자고 해서, 공용 부엌의 불을 꺼놓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았다. 셔터 아일랜드. 한참 전에 본 영화지만 그 때 당시에는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같은 것 두 번 보기 싫어하는 나는 그대로 그 영화를 기억에서 지운지 오래였다. 아이스크림까지 얻어먹으며 디카프리오의 신들린 연기를 보았다. 영화가 끝난 후 결말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그제서야 나는 영화를 확실히 이해하였다. 우리집 친구들은 영화 끝난기 한 시간 전에 돌아온 뒤라, 여유있게 집으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와 이렇게 일기를 쓴다. 혼자 있는 저녁보다 훨씬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거기에 단어 하나도 알아왔다.
영화가 다 끝나고, '아, 그래 어느 장면에서 단어가 나왔던 것 같은데..?' 하면서 다 같이 찾은 단어이다. 과연 원어민도 어려울 단어다. 구글로 단어를 찾으며 뜻을 설명하는 영영사전에서 incise라는 단어까지 덩달아 알게 되었으니 일석이조. 나는 남들보다 쪼-끔 더 뇌를 사랑하니, 그 애정까지 덧붙여 일석 삼조. 이 모든 일은 학생증을 두고 온 데서 일어났다. 그러므로 어떤 변수에도 조급해 할 필요 없이, 상황을 의연하게 즐기면 된다. 적어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 정도라면.
'예전 글 > 일기(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생일 후기 (0) | 2014.04.20 |
---|---|
해외에서 두 달, 언어장애 (0) | 2014.03.25 |
아일랜드 생활 후기_사람에 대해서 (0) | 2014.02.15 |
040214_아일랜드 생활 후기_영어에 대해서 (0) | 2014.02.05 |
2013. 12. 18 (0) | 2013.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