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림과 만들기/TRPG 후기

포도원의 파수견 레몬 요새 교구 + 170423 후기

레몬 요새 교구 (자동 복구됨).docx

 

  제이슨 모닝스타가 2004년에 만든 포도원의 파수견 교구 레몬 요새입니다. 모닝스타답게 피아스코 뺨치는 막장과 여러 등장인물들이 어지러이 나옵니다.

 

원래 이 포스트에는 레몬 요새를 굴릴 미래의 마스터를 위해 4 23일 세션의 후기를 복기하듯 적으려 했건만, 오류가 나서 1/3도 쓰지 못하고 날아갔습니다. 후기를 남기자는 의욕도 함께 날아갔습니다.


그 날의 이야기는 플레이어분들의 후기로 대신하겠습니다.

http://trpgorlife.tistory.com/20

https://twitter.com/glissandraa/status/856140178192179200

https://twitter.com/ba5909/status/856123335888953344

 


그래도 미련이 남아 마스터링을 하고 느낀점을 기록합니다.


  •      이야기 진행을 짐작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물과 장소 묘사를 준비합니다.

포도개에는 레일로드 RPG의 시나리오에 해당하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을은 짧으면 룰북 한 페이지면 끝날만큼 내용이 짧습니다. 마을의 뼈대를 제외하면, 마스터가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야 합니다. 다행히 포도개는 그 정도 뼈대로도 4시간이 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룰입니다.

그래도 마을에 어떤 장소가 있는지 생각하고, 이중 많이 나올 법한 곳을 예상하여 묘사를 준비하면 전체적인 이야기도 두터워지고 즉석에서 말을 짓는 부담도 줄어듭니다.


NPC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파수견에게 바라는 바를 토대로 이들이 성격과 겉모습을 준비합니다. 여느 RPG가 그러듯이, 파수견은 NPC의 덜미를 잡고서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데려갑니다. 그 순간, NPC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마을 사람들이 파수견에게 바라는 점'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물며 마을 뒷산 바람을 움직이는 악마마저 파수견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니까요. 어떤 상황에서든 npc가 욕망과 신념에 충실하게 하면 이야기는 저절로 생겨났습니다.

 

 


   덧붙여, 이번 세션에서는 주연만 8명이라 이들을 한꺼번에 살아있는 사람처럼 그려내는 일은 제게도 버거울 것 같았습니다. 밤의 마녀들 카드에 영감을 받아, 이 시대 사람들 사진을 베껴 npc 카드를 만들었습니다.

 

 

핸드아웃은 편리하지만 상상이 끼어들 여지를 줄입니다. 그럼에도 주연만 8명인 세션에서는 핸드아웃으로 얻는 이득이 손해보다 앞섰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레몬 요새 교구는 13년 전에 나와 수많은 GM의 손을 거쳐갔습니다. 정교한 핸드아웃 없이도 마스터의 멋진 묘사로 재밌는 플레이가 나올 수 있겠지요.

 




  • 꽉 막힌 생명의 왕을 받아들입니다. 생각보다 재밌습니다.

포도개에서 GM은 (생명의 왕이라는) 신보다는 악마의 입장에서 세션을 진행합니다. 생명의 왕이 파수견이 들고다니는 생명에 서에 있다면, 악마는 마을에 깃들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니까요. 생명의 왕은 고리타분하고 막혀있지만, 악마는 살아있는 욕망에 움직입니다. 그렇기에 마을을 준비하는 GM의 눈에 가끔은 악마야말로 가장 합리적인 존재로 보이기도 합니다.  


(레몬 요새를 끝낸 플레이어의 후기)


하지만 재미있게도, 파수견을 맡은 플레이어 대부분은 자신의 임무와 신앙에 충실합니다. 캐릭터의 배경, 코트, 최초 대결 같은 설정이 모여 플레이어를 파수견의 자리에 단단히 묶어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전 세션에서는 의심의 화살이 가득 쏠린 범인을 옹호하던 파수견이 있었습니다. 단지 캐릭터 메이킹 단계에서 관계 란에 그 NPC를 혈연으로 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새 나오는 '자유도 높은 RPG'에서, 플레이어는 도덕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도바킨은 세상을 구할 드래곤본인들, 마을을 지키는 경비병을 죽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게임을 하면서는 캐릭터의 의무에 옭아매여 선택을 고민할 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도개는 의도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모순덩어리 종교의 파수견을 맡깁니다. 그러고서는 현실에서는 물론 여타 RPG에서도 느껴본적 없는 딜레마 속으로 플레이어를 빠트립니다.

이런 딜레마를 제대로 느끼게 하려면 먼저 이 종교를 구현해야 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눈에 아무리 말도 안 되는 교리일지라도, 생명의 서가 맞다고 하면 맞는 것입니다. 비록 이렇게 만든 딜레마가 억지로 짜낸양 허접해보여도, 이미 자신의 파수견 역할에 이입한 플레이어들은 진심으로 고민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답을 낳으며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 불리한 대결은 깨끗이 포기합니다.

포도개는 GM이 파수견을 이기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결 시스템은 재미있지만, 포도개는 NPC가 대결에 지고, 마지못해 진실을 터놓는 그 순간 긴장도가 높아집니다. 그러니 자신의 신념을 걸고서 절대 질 수 없는 대결은, 파수견 대 파수견에 넘겨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