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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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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만족하는 수가 판타지 세계엔 있을까? 판타지 속 세계는 현실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거리를 두고 폭력을 감상할 수 있을 만큼은 현실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이야기에 공감하고 즐길 만큼은 현실과 가깝다. 그래서 판타지 문학을 읽으면 거리를 두고 이세계를 감상하면서도 동시에 현실 세계를 낯설게 볼 수 있다. 마수가 나타나는 중세 판타지 세계는 우리 세계와 달라 보이지만, '서로가 도우면 다 같이 행복하지만 믿지 못하는' 관계로 가득한 점은 맞닿아 있다. 속 세계는 이 지점에서 달라진다. 주인공 울리케 피어클리벤이 불신 가득한 관계를 서서히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폭력으로만 성립하던 관계에 상호 이익을 추구한다. 말만으로 험악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 법. 울리케의 뒤에는 용 빌러디저드가 있다. 누구도 그 앞에서 꺼낸 말을 번복하지 못할만큼 ..
관계의 본심 & 생각에 관한 생각 여름 방학이 되면 책을 좀 읽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책은 무겁고, 스마트폰은 가볍더군요. 무게 얘기만은 아닙니다. 언제부터 내 뇌가 종이보다 LED에 더 끌렸는지, 참. 그래도 없는 기억 짜내서 기록해볼 책은 저 두 권입니다. 머리에 남기만 하면 유용할 내용 뿐이지만 한 장을 읽으면 이전 장이 지워지는 '교양 심리학 책'입죠. 두 권 모두 무슨 내용을 다뤘는지 제목만 봐도 알만합니다. 관계의 본심은 컴퓨터와 사람을 상대로 한 사회심리학 실험들을, 생각에 관한 생각은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 생각의 헛점을 이야기합니다. '관계의 본심'은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물어보면 답은 예상되는' 실험들을 통해 인간관계의 팁을 알려줍니다. 예컨대 '공통점이 많고, 자신의 속을 먼저 보이며, 행동에 일관성이 ..
다시 순수 박물관, 타임 패러독스 절반. 광주에 내려가는 길에 순수 박물관을 다시 읽었다. 쇼파에 누워 소설을 읽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으니 기분이 참 좋더라.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두 번 읽는 일은 없다시피하는데, 이난아 씨의 '오르한 파묵' 책을 읽으며 순수 박물관의 사진을 보니 책을 안 읽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과연, 두꺼운 책이었지만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전에 읽고 썼던 글이 블로그에 있겠지만 찾기가 귀찮으니 두서없이 느낌만 정리. 1. 케말은 천하의 개쌍놈만은 아니었다.1970년대 터키 사람을 지금 관점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될테다. 케말은 여자 둘에 그 가족까지도 책임질만한 부자다. 그러니 자신의 능력에 따라 '행복한 가정+어린 여자 애인과의 로맨스'를 둘 다 얻으리라 생각할 법도 하다. 처신만 잘 했어도 충분히 가능..
군단의 심장 플레이 다섯시간 후기 군심은 바쁜 일 다 끝나면 한꺼번에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생겨 PC방을 갔다. 요즘 PC방은 참 비쌌다. 캠페인만 깨려고 했는데, 돈이 정품 사는 가격보다 더 나가게 생겼다; 두 시간 하고 밥 먹고, 다시 세 시간 하고 돌아왔다. 아래는 느낀 점. 고작 다섯시간이래도 당연히 스포 들어있음. 행성 항로는 차->제루스, 케리건이 막 칼날 여왕으로 변한 그 시점에서 멈추었다. 1. 첫 화면이 레이너에서 케리건으로 바뀐 걸 보니 산뜻했다. 여왕님은 늙지도 않는다. 2. 레이너는 못 본 사이에 더 늙었다. 흰머리만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원래 노안인 사람은 천천히 늙는다던데, 레이너님은 아닌갑다. 사막에서 자외선에 구워져서 그런가, 멩스크때문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을까..
스피킹 speaking1. 새로운 도시로 이사간 친구가 새 친구를 사귀는데 어려워한다. 이 친구에게 어떤 충고를 해 주겠는가?2. 로봇은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찬성, 반대?3. 기숙사 라운지의 TV를 없애야 한다는 학교 신문에 투고된 레터. TV때문에 애들이 말을 안 하고 주변 방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남자는 TV에 나오는 공통주제로 학생들이 이야기를 하며, 주변이 시끄러운 건 기숙사 문을 잘 닫고 다니면 된다고 반대한다. 그런데 TV를 없애서 애들이 서로 수다를 떨면 주변 방이 시끄럽긴 똑같잖아.4. Interactive Cascade. 남들이 많이 선택하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 심지어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일단 휩쓸리고 본다. 교수는 개인적인 경험을 예시로 든다. 여행을 가서 가이드북을 봤..
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재미가 있으니까 읽기는 하는데 도대체 뭐가 재미있는지 모를 책들이 있습니다. 스릴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SF나 판타지 고유의 '세상을 뒤집어 바라보기'도 없으면서 계속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순수 문학이라고 꼬리표가 달린 두꺼운 책은 분명 재미없어보이는데, 그런 책 중에서 막상 읽다보면 손을 뗄 수 없는 책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책들을, 왜 골치를 썩이면서까지 읽을까요. 예쁘게 생긴 오르한 파묵의 책 '소설과 소설가'는 읽는 사람도 몰랐던 순수 소설을 읽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예로 많이 들어, 이 책 자체가 오르한 파묵 소설의 해설서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저도 제가 왜 오르한 파묵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몰랐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