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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감상

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재미가 있으니까 읽기는 하는데 도대체 뭐가 재미있는지 모를 책들이 있습니다. 스릴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SF나  판타지 고유의 '세상을 뒤집어 바라보기'도 없으면서 계속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순수 문학이라고 꼬리표가 달린 두꺼운 책은 분명 재미없어보이는데, 그런 책 중에서 막상 읽다보면 손을 뗄 수 없는 책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책들을, 왜 골치를 썩이면서까지 읽을까요.

  예쁘게 생긴 오르한 파묵의 책 '소설과 소설가'는 읽는 사람도 몰랐던 순수 소설을 읽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예로 많이 들어, 이 책 자체가 오르한 파묵 소설의 해설서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저도 제가 왜 오르한 파묵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몰랐던 이유를 알 법도 싶었습니다.

  책의 원제는 '소박하고 성찰적인 소설가' 인 듯합니다. 겉표지에 작게 영어로 써 있어요. 책의 제목으로는 '소설과 소설가'가 더 나은 성싶습니다. 하지만 파묵은 원래 제목을 따라가며 소박한 소설가와 성찰적인 소설과, 소박한 독자와 성찰적인 독자를 구분합니다. 소박한 이들은 정말 소박하게 소설을 느낀대로 쓰고, 느낌으로 받아들이지만, 성찰적인 이들일수록 소설 내용 너머를 탐색합니다. 파묵 주변의 소박한 독자들은 그의 '순수 박물관'을 읽고 '파묵 씨, 당신이 케말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성찰적인 독자는 케말을 보며 작가 파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말 소박한 독자들은 파묵 주변 사람 중에서 케말을 찾겠지만요ㅋㅋㅋ)

  성찰적인 소설가는 소설을 쓰며 풍경 하나, 단어 하나까지 신경씁니다. 영화나 만화의 연출과 비슷한데, 소설 특유의 인물의 시각으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더해집니다. 파묵은 순수 문학 소설은 캐릭터를 잡기보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사건과 흐름을 만든다고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그는 소재를 먼저 떠올리고, 그 다음 인물을 따라가게 만들며 소설을 쓴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심부, 중심부는 소설이 감추고 있는 주제입니다. 파묵은 소설을 읽는 재미는 이 중심부를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소설은 주제가 확실히 잡히지만, 그렇지 않은 소설도 많지요. 밤을 새며 읽었던 '눈마새'와 '피마새'의 주제는 아마도 인간의 자유의지겠지요. 파묵의 '눈'에서 제가 찾아낸 주제는 '딱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보다 우선한다.'입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과정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피는 것과 비슷하지만, 중심부는 숲과 같아서, 소설을 다 읽고, 또 한참 생각하기 전에는 알아차리기 힘들기가 보통입니다. 파묵 왈, 소설을 쓸 때는 이 중심부를 보일락 말락 잘 조절해야한다네요.

  그러고보면 파묵의 소설은 주제가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은 작가 말마따나 성격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그 이야기에 더 공감할 수 밖에 없던듯하구요. 아무래도 성격이 뚜렷한 인물이 주인공이라면, 그들과 다른 성격의 독자는 소설에 공감하기 힘들었겠지요. 홈즈나 루피에 '공감'을 하며 읽는 독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순수 박물관'은 읽은지도 거의 3년째인데, 저는 아직도 가끔 케말이 떠오릅니다. 소박한 독자들이 '파묵씨, 당신이 케말인가요?' 하고 물었다지만, 저는 비단 파묵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케말이 될 수 있었다고, 그저 대부분 케말이 되길 포기했을 뿐이라 생각합니다. 소설의 시점을 조금만 옮겨보면 케말의 '천하의 나쁜 놈' 성격이 보이고, 자신이 원하던 바는 거의 이루지 못한 불쌍한 남자의 일대기가 읽히겠지만, 파묵의 소설을 따라가는 중에는 우리는 모두 케말을 이해하고, 그의 행복을 부러워합니다.


+ 어떠한 소재를 멋지게 설명한 책들이 그렇듯, 이 책을 읽다보면 괜히 소설이 쓰고 싶어집니다. 짧은 책을 읽어가며, 저는 적어도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중심부를 짜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습니다. 제가 그리다만 만화도 새삼 떠올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예 처음부터 뜯어고쳐 다시 그리고도 싶지만, 영원히 그럴 기회는 날아간 것 같은 제 만화, 버바네 휴게소의 원래 주제(이 책에서는 중심부라고 표현하는)는 나름대로 '사람이 사람의 가능성을 멋대로 판단하고 제어해도 되는가' 였습니다.

  파묵이 충고했던 중심부의 노출에 대해서도 저도 비슷하게 많이 고민했습니다. 말풍선이나 인물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담기에는 너무 노골적인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궁리하며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나름 조절했다고 생각했는데 1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너무 대놓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 짜기는 역시 어렵습니다.


+ 돈을 줘도 귀찮다고 밖에 안 나가는 제 성격에, 다른 곳은 안 가도 터키는 꼭 가고 싶게 만든 장본인이 파묵입니다. 2012년에 완공되었다는 순수 박물관에 꼭 가고 싶어요. 니샨티쉬 거리도 어떤 곳인지 궁금하고, 카르스도 눈 오는 날에 들러보고 싶어요. 우리 나라 작가 중에서도 외국인에게 '한국에 꼭 가고싶다'는 마음을 들게 할 수 있는 작가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있을텐데, 제가 책을 많이 읽지 않아 모르는 것이겠지요.


+ 어려워 보이고 두꺼운 책들은 손 대기가 영 무서운데, 이 책에 예시로 나온 책들은 적어도 졸업하기 전에는 꼭 읽어야겠습니다. 다행히(?) 안나 카레리나, 악령밖에 기억나지 않습니다ㅋㅋ 문학과 예술 핵교만 하나 남았는데, 듣는김에 도톨이로 들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