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전 글/감상

다시 순수 박물관, 타임 패러독스 절반.

  광주에 내려가는 길에 순수 박물관을 다시 읽었다. 쇼파에 누워 소설을 읽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으니 기분이 참 좋더라.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두 번 읽는 일은 없다시피하는데, 이난아 씨의 '오르한 파묵' 책을 읽으며 순수 박물관의 사진을 보니 책을 안 읽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과연, 두꺼운 책이었지만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전에 읽고 썼던 글이 블로그에 있겠지만 찾기가 귀찮으니 두서없이 느낌만 정리.


1. 케말은 천하의 개쌍놈만은 아니었다.

1970년대 터키 사람을 지금 관점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될테다. 케말은 여자 둘에 그 가족까지도 책임질만한 부자다. 그러니 자신의 능력에 따라 '행복한 가정+어린 여자 애인과의 로맨스'를 둘 다 얻으리라 생각할 법도 하다. 처신만 잘 했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2. 케말은 죄는 순진함이다.

케말이 자신의 박물관을 왜 '순수 박물관'이라 지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정말로 퓌순의 순수함을 느꼈을까? 아니면 자기 자신의 사랑을 순수라고 표현하고 싶었을까. 둘 다 아닐 것 같다. 케말은 퓌순의 마음을 이해한 적도 없고 이해하려 한 적도 없이 무작정 그녀를 원했다. 순진함이라는 표현도 아닌 것 같다. 진짜 그냥 무작정! 케말만큼 이기적인 사람은 많을테다. 하지만 그만큼 바보같이 순진한 사람은 없다. 직원들이 다 눈치챌만큼 시벨과 사무실에서... 도 그렇고, 약혼식에 퓌순을 부른 건 대체 무슨 멘탈인지.


3. 퓌순의 감정 노출이 기억보다 많더라. 그리고 1인칭 화자인 케말은 독자보다 퓌순의 마음을 못 헤아리더라.

처음부터 케말은 퓌순을 가볍게 만나긴 했다. 그래도 '당신한테 지독하게 빠져버렸어' 같은 말을 듣고난 반응이 안심이라니. 뭐.. 사람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랑했다면 그 불안을 받아줄 그릇은 되어야지. 그래. 그 때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잉여로운 8년 후에도 케말은 발전하지 않았다. 슬프지만 자업자득이다.


4. 그래도 케말이, 역시 부럽다.

죽기 전에 자신의 삶이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는 그의 방식으로 퓌순을 평생 사랑했다. 남들 같았으면 하고 싶어도 못할 일이다. 케말이 과연 그만한 돈이 없었어도 그 사랑이 가능했을까 의구심은 들지만, 그거면 됐지. 사실 모두가 케말처럼 순진하게 사랑하고 싶지않나. 요즘 세상에 케말처럼 미친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케말처럼 살지 않는 삶보다는 케말처럼 사는 삶이 더 성공한 삶이다.




  짐바르도의 타임 패러독스를 절반 읽었다. 절반까지만 읽어서 그런가. 자기계발서와 교양 심리학서 사이에서 애매한 책이다. 숱한 사람들의 성격을 시간의 관점에서 나눈 점은 신선하다.

  나는 미래지향형 인간이다. 과거를 거의 떠올리지 않고, 미래의 이러저러한 일로 행복한 나를 상상하기 좋아한다. 계획은 거의 짜지 않지만, 그래도 일은 미리미리 하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엔 생각 자체를 별로 안 하고 살아선지, 시간에 대한 개념도 거의 담고 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유형을 나눠봐도 재미있겠다. 친구 한 명은 딱 봐도 미래지향적이다. 사실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지향적으로 보인다. 깊이 대화하지 않는 이상 모를 과거 긍정, 부정형 사람들. 만나고 싶지 않은(...) 미래 초월적인 사람들. 간간히 보이는 현재 쾌락적이거나 숙명적인 사람들. 아,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부럽다. 나도 현재 쾌락적으로 살고싶다. 내가 바라는 미래에도 나는 여전히 미래를 바라보거나 공상 속에 살텐데. 언제쯤 나는 과연 현재를 즐기며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