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속 세계는 현실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거리를 두고 폭력을 감상할 수 있을 만큼은 현실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 이야기에 공감하고 즐길 만큼은 현실과 가깝다. 그래서 판타지 문학을 읽으면 거리를 두고 이세계를 감상하면서도 동시에 현실 세계를 낯설게 볼 수 있다.
마수가 나타나는 중세 판타지 세계는 우리 세계와 달라 보이지만, '서로가 도우면 다 같이 행복하지만 믿지 못하는' 관계로 가득한 점은 맞닿아 있다. <피어클리벤의 금화>속 세계는 이 지점에서 달라진다. 주인공 울리케 피어클리벤이 불신 가득한 관계를 서서히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폭력으로만 성립하던 관계에 상호 이익을 추구한다. 말만으로 험악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 법. 울리케의 뒤에는 용 빌러디저드가 있다. 누구도 그 앞에서 꺼낸 말을 번복하지 못할만큼 강하며, 태생적으로 그 자신이 입 밖에 꺼낸 말을 번복할 수 없는 존재다.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존재' 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피어클리벤의 금화> 세계와 우리 세계를 갈라놓는다.
말한 바를 반드시 지키는 반신 종족이 있는 세상은 현실과 어떻게 다를까? 교섭이 성사되고 협상가는 성장한다. <피어클리벤의 금화>1권은 울리케가 성장하는 이야기다. 울리케는 키운 어머니가 보기에도 '호기심 많고 씩씩하지만 비범하지는 않던' 아이였다. 하지만 용과의 첫 번째 협상에 성공하고서 울리케는 점점 더 복잡한 상황 속에서 판을 키운다. 대범한 판단은 성공과 실패를 오가지만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모습은 독자가 보기에도 대견하다.
교섭과 판 키우기가 이야기의 소재라서 그런지 대화를 읽는 재미가 있다. 대화 속에 각자의 가치관과 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울리케는 밤이든 낮이든 대화로써 인물들의 의중을 읽어나간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가 "너를 먹겠다"는 용의 선언이고 울리케의 대답이 이어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종족마다 어투가 다르다. 같은 종족이라고 각자 개성이 뭉개지지도 않는다. 용과 용이 만나면 어떤 대화를 나눌지 궁금해질 정도다. 인간 사이에도 신분에 따라 어법이 달라진다. 봉건 신분 제도와 마법과 한국어가 만나 대화가 다채롭다.
용과 인간이 대화하던 이야기에 온갖 인물들이 서로 끼어들며 사태가 커진다. <피어클리벤의 금화> 1권은 그 한복판에서 끝난다. 2권에서는 울리케가 처할 상황이 더욱 넓고 복잡해질 것이다. 있는지도 몰랐던 존재의 이해를 고려하고, 모두가 만족할 패를 내어야 한다. 그럼에도 울리케는 어떤 환경에도 기죽지 않고 제 능력을 선보일 것이다. 날을 헤며 2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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