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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감상

관계의 본심 & 생각에 관한 생각

  여름 방학이 되면 책을 좀 읽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책은 무겁고, 스마트폰은 가볍더군요. 무게 얘기만은 아닙니다. 언제부터 내 뇌가 종이보다 LED에 더 끌렸는지, 참. 그래도 없는 기억 짜내서 기록해볼 책은 저 두 권입니다. 머리에 남기만 하면 유용할 내용 뿐이지만 한 장을 읽으면 이전 장이 지워지는 '교양 심리학 책'입죠. 두 권 모두 무슨 내용을 다뤘는지 제목만 봐도 알만합니다. 관계의 본심은 컴퓨터와 사람을 상대로 한 사회심리학 실험들을, 생각에 관한 생각은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 생각의 헛점을 이야기합니다.


  '관계의 본심'은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지만 물어보면 답은 예상되는' 실험들을 통해 인간관계의 팁을 알려줍니다. 예컨대 '공통점이 많고, 자신의 속을 먼저 보이며, 행동에 일관성이 있고, 나에게도 좀 더 익숙한 이에게 더 끌리는가?' 같은 질문이요. 답은 아시겠지요. 즉 이 책은 겸손하면 성격은 좋아보여도 능력은 떨어져보이며, 비판을 하고싶으면 칭찬 앞에 하고, 유머는 통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기분을 풀어준다(!!) 같은 좋은 이야기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해줍니다.

  그 실험들이 대부분 컴퓨터를 이용한 실험이라는 점이 논의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긴 합니다. 그래도 누가 한 번 읽고 마는 책의 조언을 성서인양 달달 외우겠어요. 저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시험에 나올양 공부하고 외우는 성격은 아니니까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그 책에 '누군가에게 정보를 얻고 싶다면 자신의 상황을 먼저 이야기하라'고 해서요...




  '생각에 관한 생각'은 두께도 두껍고, 방대한 내용에, 기억하고 싶은 정보도 많았습니다. 감히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나는 참 내가 대충 산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그렇구나' 입니다. 책은 과부하가 걸리기 싫은 뇌의 어림잡기 덕에 일어나는 실수들을 담았지요. 사람들은 조금만 따져도 너무 당연한 일에 손해를 보고, 눈치도 못채고 (오히려 모순을 알려주면 부정하면서!)평생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유명한 실험. '블로그 주인은 대학생이다' 보다 '블로그 주인은 동물과 고기를 동시에 사랑할 줄 아는 표용력있는 대학생이다' 가 더 옳을 확률이 높게 느껴지는 것! 곱의 법칙에 따라 확률은 떨어지니까요.

  앞으로 무슨 판단이든, 내릴 때마다 곰곰이 되새겨야할 문장, 'What you see is all there is' (앞부분을 안 찾아봐서 그러는데 WYSIATI가 저 약자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당장 보이는 정보만 가지고 판단하는데, 모든 정보를 알 수 없다면 제일 먼저 평균을 따지는 게 현명하다고 합니다. 블로그 주인이 인문학도일 확률에 글만 읽고 마냥 0을 때리지 말자는 소리죠. 총 대학생 중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평균 비율을 먼저 생각한 후, 그 다음 글에서 읽히는 정보에 가중치를 곱해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것! 이외에도 통계 표본이 적으면 결과가 산으로 간다, 사람은 이익을 볼 땐 확실한 것을, 손해를 볼 땐 도박을 택한다... 등, 다들 그 때 읽을 땐 참 재밌었던 이야기들이 가득했습니다.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사실관계를 의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화두가 나오기 전에 먼저 던지는 질문에 저 자신이 다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택한다'마다 걸리는 제 모습을 보니 허탈했습니다. 심리학의 소명이 원래 사람들 반응의 공통점을 묶어 정리하는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합리적인 답을 택할줄은 몰랐거든요. 심지어 천천히 생각하기 전까지는 왜 틀렸는지도 모르겠으니...

  책에서 부정하는 '합리적인 인간'의 합리는 경제학적 측면의 합리입니다. 하지만 논리나 합리 찾기 정말 좋아하는 저로서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존재인지를 깨닫기에도 바빴습니다. 게다가 바로 지난학기에 통계학을 들었는데도요! 경제학과 인지심리학이 동시에 연구하는 분야야 '돈'이 걸린 쪽. 즉, 사람들이 그렇게나 비합리적으로 행동한 영역은 다름아닌 돈이 걸린 일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돈이 걸리지 않은 다른 숱한 일에 사람은 얼마나 비합리적일까요. (당장 갚을 돈만 잔뜩인데 고향에 내려온 저는 뭔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WYSIATI. 잠깐만. 책을 읽어봐야 나중에 기억이 하나도 안 나니까 겉으로는 손해같지만, 어쩌면 내가 모르는 새에 은근히 책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