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가 학회 차 플로리다에 간 적이 있었다. 학회가 끝나고 다 같이 디즈니월드에 갔다. 그곳에서 반려는 해골 무늬 문신을 팔에 새긴 50대 남성을 보았다. 반려는 궁금해했다. 그 사람이 몇십 년 전 해골을 팔에 새긴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지, 그 순간까지도 자기 문신이 멋지다고 생각할지를.
문신은 변하지 않는다. 자기 팔에 문신을 새기는 사람은 미래의 자신이 과거에 새긴 문신을 여전히 좋아하리라 예상하는 이다. 세월에 아랑곳없이 자기 취향에 확신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신기했다.
문신을 새기는 사람들이 신기한 만큼 나는 오래 쓸 물건을 잘 사지 못했다. 지금 결정에 미래의 내가 후회할까 걱정이었다. 좋은 옷을 사는 대신 저렴하지만 2-3년 만에 버릴 옷을 사 입었다. 새 집에 들어갈 가구를 사기는 아직도 두렵다. 적당한 가구를 사다가 5-6년 쓰고 바꿀까도 얘기했다.
작년에 값비싼 운동화를 산 것은 나다운 일은 아니었다. 재작년과 작년에 달리기 행사를 많이 신청했다. 그 때문인지 몇 년 신은 운동화 밑창이 닳아버렸다. 가을 달리기 행사를 앞두고서 내 발에 딱 맞는 신발에 욕심이 났다. 걸음걸이에 맞는 운동화를 찾고 보니 세일을 하지 않아 신발이 꽤 비쌌다. 평소에 한 번도 그만한 운동화를 산 적이 없었다. 망설이던 나에게 반려가 운동화를 선물해주었다. 운동화를 받긴 받았지만 운동화 값어치만큼 달리기를 할지는 자신이 없었다.
새 운동화를 신고 뛴 아디다스 달리기는 그해 마지막 달리기가 되었다. 왠지 그 후로는 잘 달리지 않았다. 신발이 두껍다 보니 처음이자 마지막 달리기 이후에는 겨울 신발 노릇을 몇 번 하다가 이듬해 봄에는 신발장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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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에도 달리기 행사가 잔뜩 열렸지만 여유가 없어 신청을 하지 않았다. 가을을 앞두고서야 친구들과 함께 아디다스 마이런을 다시 신청했다. 달리기 행사를 앞두고 함께 연습 삼아 달리기로 했다. 작년에 달리기 위해 샀던 그 신발을 다시 꺼냈다.
그즈음 깨달았다. 어느새 나는 취향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년 가을에 달리기를 했다면 설령 겨울과 봄에 쉬었더라도 그쯤 다시 달릴 것이다. 설령 10km 달리기를 할 때만 운동화를 꺼내 신더라도 밑창이 닳을 때까지 운동화를 쓸 자신이 생겼다. 가격이 얼마든 좋은 신발을 사서 오래 신는다면 손해가 아니다. 한 해에 한 번이라도 나는 달리는 사람이다.
1년 만에 운동화를 다시 신으니 문신을 새기는 사람들이 이해가 갔다. 그들도 나처럼 어느 순간 자기 취향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터이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나로서 살아간다. 지금 좋아하는 다른 취미들도 가끔 질리더라도 이 삶 안에서는 변함없이 좋아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가는 느낌은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불확실한 미래에 확실한 나를 하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