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 재수 생활을 제 삶에서 가장 열심히 살던 때로 기억합니다. 하루하루 일과과 똑같았기에, 그때 그 시절은 사소한 여가도, 인간관계도 포기한 채 아침에는 플래너를 쓰고, 쉬는 시간마다 수학 문제를 풀었던 시절로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집에 와서 재수 시절 일기를 펼쳤을 때, 처음에는 생각보다 딴 생각을 많이 했다고 피식 웃었고, 그러고 나서는 '이 때에 비하면 난 정말로 대충 살고 있구나'하는 죄책감이 밀려들었습니다.
가장 인상깊던 페이지는 바로 여기. '언젠가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저는 이 때 기억은 사라진 지 오래고, 지금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질테니, 훗날의 나이든 제가 이 페이지를 봐도 다시 오늘만큼 신선하겠지요.
이때 미래에 대해 아무 확신이 없는 채로도 해야 할 일을 한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제가 아니면 누가 저때의 저를 사랑해주겠어요.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으니 예전의 일기나 펼쳐보고 있는 것이라 미안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번듯한 지금 모습이면 과거의 나도 만족했을까요. 스무 살살 저를 판 대가가 스물 세 살의, 지금의 저라면... 장사를 밑져셔 했네요. 하지만 저를 또 한 번 팔지는 않으렵니다. 지금 순간순간을 최대한 느끼고 살고 싶어요. 물론, 할 때는 열심히 해야죠. 멋진 미래를 위해.
고민은 같습니다. 그때보다야 훨씬 덜 간절하지만, 그래도 답이 돌아오지 않을, 같은 물음을 던지고 싶어요. 미래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겠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현실로서는 알 수 없는 물음이라,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살아야 미래를 확신할 수 있을텐데요...
대학생 시절 글을 다시 볼 생각이 있나요? 지금 보고 있나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나요. 주변엔 어떤 사람들이 있나요? 영어는 어때요, 많이 늘었어요? 스물 세 살 대학생 때보다는 머릿속에 뭐가 많이 있겠죠? 논문도 술술 읽어지나요? 지금까지 삶에 자신은 있나요, 당신 성격에 시간을 낭비 투성이로 썼다고 툴툴거리겠지만 낭비하지 않은 시간이나마 열심히 살았다면 저는 만족할래요. 행복한가요? 과거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니, 지금의 저를 떠올려도 아무 기억도 남지 않겠죠. 삶의 모든 면에 만족하지는 못하더라도, 당신의 지금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저 일기장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지금은 단종. 구할 수 없었습니다. 농장에 갔다오고 일기장이나 새로 사려구요. 블로그에 글을 쓰면 다시 안 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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