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eland UCD의 Fred Cummins 교수의 인지과학 개론(Introduction to Cognitive Sciene)의 내용을 정리하고 보탠 글입니다. 그림 자료는 재사용 가능한 Flicker의 사진을 이용하였습니다. 무단 전재와 재배포를 금지하고, 정정 및 이의 제기를 환영합니다.
1. 마음에 대한 철학의 대립 _ 합리론과 경험론
'인지과학'은 197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학문의 한 갈래로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부터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에 몰려들었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이 확고히 자리잡기 이전, 마음에 대한 탐구는 철학의 영역이었습니다.
마음에 대한 철학적인 관점은 합리론(Rationalism)과 경험론(Empiricism)으로 나뉩니다. 합리론은 앎이 인간의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다는 논점입니다. 이성과 합리성은 인간의 특별한 능력이며, 인간은 굳이 경험하지 않았어도 선험적으로 무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외부 세계의 경험이 모두 속임수와 환상일지라도 그 생각을 하는 자신만큼은 존재해야 한다는 합리론자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입니다. 1
경험론은 앎이 감각에 의해 얻은 경험이나 실험에 의해 축적된다는 논점입니다. 로크는 사람은 태어났을 때는 빈 서판(tabula lasa) 처럼 아무 지식도 없지만, 마치 조각칼이 서판에 흠집을 내듯 외부 경험이 사람에 앎으로 새겨진다고 비유하였습니다.
2. 심리학의 정립과 행동주의까지
19세기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과학적 방법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1890년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 덕에 심리학은 비로소 과학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마음을 어떻게 연구하는 것이 '과학적'일까요? 정신물리학(psycho-physics)은 물리적 자극과 심리적 반응을 치밀하게 측정하여 둘 사이의 지수적 관계를 알아내었습니다. 우리의 감각은 물리적으로는 몇 배 씩 커졌어도 심적으로는 한 단계 커졌다 느껴서, 자극과 반응에 지수함수 꼴 그래프를 그린다고 합니다.
내성법(Introspection)이라는, 미덥지 못한 연구 방식도 있었습니다. 내성법은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위의 이미지에 나온 것과 같은 걸 볼까봐 내성법을 쓰지 않는답니다.
20세기 초반 심리학의 무대에는 행동주의가 있었습니다. 행동주의(Behaviorism)는 '측정할 수 없는 대상은 과학이 아니다'라며 마음을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합니다. 이들에 의하면 심리학이 연구할 대상은 자극과 그에 반응하는 행동 뿐입니다. 행동주의로는 머릿속 수많은 지식과 반응에 대해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행동주의를 계속 붙들자면 학습과 경험에 대해서도 설명이 빈약해집니다. 가장 유명한 행동주의자인 스키너는 영어를 말한다는 것은 곧 대화에서 적절하게 응답할만한 행동 체계를 갖는 것뿐이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과연 언어가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만 쓰이는 행동일 뿐까요?
3. 인지 과학의 시초, 인지 혁명
행동주의에 맞선 촘스키의 보편 문법에서부터 인지 혁명(Cognitive Revolution)의 서막이 올라갑니다. 인지언어학자 스티븐 핑커는 저서 The Blank state(한국어판_빈 서판)에서 인지 혁명을 일으킨 주요 개념 다섯을 소개합니다. 위키피디아에서 긁어왔습니다.
"The mental world can be grounded in the physical world by the concepts of information, computation, and feedback."
> 정신은 정보, 계산, 피드백에 의한 물리적인 세계에 기반한다.
"The mind cannot be a blank slate because blank slates don't do anything."
> 빈 서판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마음은 빈 서판일리 없다.
"An infinite range of behavior can be generated by finite combinatorial programs in the mind."
> 무한한 행동의 가짓수는 유한한 마음 내부의 프로그램 조합으로 생성된다.
"Universal mental mechanisms can underlie superficial variation across cultures."
> 보편적인 정신 기제는 문화적 변이의 기저에 내제한다.
"The mind is a complex system composed of many interacting parts."
> 마음은 부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복잡한 체계이다.
인지 혁명의 주역인 제리 포더는 마음의 구조를 서로 다른 모듈의 총합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사고는 언어처럼 구성되거나, 혹은 언어 그 자체이리라 예상합니다. 2
사고가 언어처럼 구성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최초로 인공 지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앨런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은 물리적 상징 시스템 가설(Physical Symbol System Hypothesis)을 발표합니다. 가설에 의하면 단어가 언어를 구성하듯, 우리의 사고를 구성하는 것은 상징(symbol)입니다. 단어가 문법에 맞게 결합하듯 상징은 특정하고 유의미한 방식으로만 의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가설을 적용하여 기계를 학습시키는 여러 알고리즘과 사례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4. 정보 처리 패러다임
초기 인지과학은 사람의 마음을 컴퓨터의 작동 방식에 유추했습니다. 사람은 뇌라는 하드웨어에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서, 감각을 입력 받아 행동을 출력하는 기계입니다! 이를 정보 처리 패러다임(Information Processing Paradigm)이라 합니다. 비유는 완벽해보였고, 인공 지능 연구에 좋은 지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공 지능 연구가 점점 사람과 기계의 차이는 커졌습니다. 이전에는 기술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던 난점들이, 기술이 충분히 진보된 후에도 해결되지 않았으니까요. 컴퓨터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복잡하고 논리적인 계산을 척척 해내지만,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알아맞추는 그림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결국 정보 처리 패러다임은 약자로 GOFAI라고 하는, '한물 간 좋았던 인공 지능(Good Old Fashioned Artificial Intelligence)'가 되고 맙니다. 3
5. 인지 과학의 동향
GOFAI의 한계를 알게 된 이후, 사람들은 신경망부터 체화된 인지에 이르기까지 인지 과학의 새로운 대안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기존의 연구도 계속됩니다. 몇 년 전에는 컵을 들다가 이제는 공을 차는 아시모나, 대가리만 달면 어느 동물이라고 해도 믿을 빅독까지, 인간을 본뜬 로봇들은 쭉 발전하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신경 과학은 뇌가 진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혀내기만을 벼르고 있지요. 인지과학은 길게 잡아도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젊은 학문입니다. 더 많은 발전과 혁명이 계속되겠지요.
노트 필기를 하듯 글로 옮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얼마나 모르는지만 알게 됩니다. 여기에 가로막지는 않더라도 가파르기는 장난 아닌 영어의 벽이라니...
- 인간 활동의 합리성 끝에는 수학이 있죠.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정밀한 수학을 보고 있자면 (저를 제외한)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게 됩니다. [본문으로]
- 하지만 몇 십 년 후 그는 'The mind doesn't work that way (한국어판_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에서 자신의 이전 주장을 부정합니다. 책이 너무 어려워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ㅠ [본문으로]
- 요즘에야 구글신의 위엄으로, 컴퓨터도 그림을 알아보는 세상이 되었지만, 적어도 저는 사람이 구글 검색 엔진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보지는 않을 성 싶습니다.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을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해 보았지만, 무슨 동물인지는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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