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부/인지과학

인지과학 개론 정리_5-1. 감각의 고정관념을 깨자

  고등학교 1학년 생물 시간 때 감각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생물을 가르치던 물리 전공 선생님은 혓바닥 맛 지도는 틀렸지만 문제집에 나오니 일단 외우라고 하셨죠. 

그 시절 교과서는 사람은 오감을 통해 주위 세계를 알게 된다고 쓰여있었습니다. 감각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오래 전 배운 교과서 지식을 버려야 합니다. 


1. 오감? 감각은 대체 몇 종류일까?


  오감 하면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이죠. 하지만 '촉각'이라고 뭉뚱그리기에 우리 몸이 느끼는 바는 수용기의 종류에 따라 질감에서 통증, 차가움과 따뜻함까지 다양합니다. 한 발 양보해서 촉각이 하나의 감각이라고 쳐도, 우리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계(Vestibular System)[각주:1]는 어디에 속해야 할까요? 우리 몸의 부위가 어디에 있는지 느끼는 고유 수용성 감각(Proprioception)[각주:2]은?


2. 주위 세계를 알게 된다?


  한국어판 위키백과에는 오감이 물리적인 자극을 '받아서' 의식이 변하는 활동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이렇듯 감각은 운동과 대비되는 신경계의 수동적인 기능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감각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닙니다. 우리는 감각을 보조하는 움직임과 더불어 주위 세계를 능동적으로 탐색하여 감각 정보를 구해냅니다. 깁슨실험에서 눈을 가린 참여자들은 자기 손바닥 위의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손가락을 움직인' 다음에야 질감을 느꼈지요. 우리는 가만히 눈을 감고서 손바닥 위에 살포시 놓인 물체가 무엇인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1. 시각이란 무엇인가?


'시각'은 가시 광선을 수용하지만, 빛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활동은 아닙니다. 시각은 먹이나 번식 등의 목적을 갖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일어납니다. 하지만 더 자세히, 정확히, 시각을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좋을까요? 시각의 특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해파리 Tripedalia cystophora의 유충은 다섯 종류의 세포로만 이루어져 있고, 신경계라 할 만한 구조도 없습니다. 단지 겉에 편모가 달린 세포들이 있어서, 일관성없이 움직이는 편모의 움직임에 따라 바다를 떠다닐 뿐이지요. 하지만 그 중에는 광수용체가 있는 세포가 몇 개 있어서, 이 세포들만큼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편모의 각도가 고정됩니다. 세포 몇 개가 빛에 따라 편모가 고정되고, 나머지 세포들의 편모가 움직이면? 유충은 빛이 있는 방향, 광합성을 하는 먹이가 많은 곳으로 나아갑니다. 가장 간단하고 원시적인 시각 체계입니다. 신경계가 없으므로 세포에 광수용체가 있어도 빛을 얼마다 받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따위 정보는 전혀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즉, 시각을 비롯한 모든 감각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활동'이 아닙니다.

(www.nature.com)


  시각은 왜 수많은 빛 중에서 가시광선에 해당하는 파장만을 볼까요? 우리가 태양이라는 별의 빛을 받는 행성 지구에서 진화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시광선은 지표에서 가장 반사가 많이 되는 파장의 빛입니다. 시각은 특별한 감각이 아닙니다. 그저 지구라는 환경에 가장 많이 있는 자극에 의해 생겨났을 뿐입니다. 외계인과 만나도 우리와 같은 감각이 있을이란 보장이 없네요.


2. 빛이 신경 정보로 뇌까지


  눈의 구조를 카메라에 비유해서 배웠지만, 시각은 카메라가 사진을 만드는 과정과 다릅니다. 시각을 카메라에 비유하는 유추는 틀렸습니다. 눈은 이미지를 포착하지 않습니다. 망막은 필름이 아닙니다. 색깔과 정확한 형태를 받는 원추세포(Cone cells)는 황반(Fovea)에만 집중되었지, 눈의 주변부는 움직임과 변화만을 얼추 인식하는 간상세포(Rod cells) 뿐이거든요. 이래서야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망막의 시세포 분포. 중앙의 황반에서부터 간상세포는 비교적 고르게, 원추세포는 중앙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맹점(Blind spot)은 시신경이 지나가는 곳이라 시세포가 없습니다.)


빛을 받은 시세포가 이를 전기 신호로 시신경에 전달됩니다. 



  우리 뇌는 뒷통수 언저리의 후두엽(Occipital lobe)의 1차 시각 피질(Primary visual area, V1)에서 시각 정보를 처리합니다. 안구는 이마 바로 아래에 있는데, 망막에서 받은 시각 정보는 뇌를 가로질러 맨 끝에 다다르다니. 후신경과 청신경과 비교해도 비효율적일 정도로 시각 경로는 깁니다. 하지만 이 기나긴 경로 중간에서 신경의 교차가(그것도 절반만) 일어납니다. 교차 덕분에 어느 안구에서 보았는지와 상관 없이 왼쪽 뇌의 시각 피질에서는 오른쪽 시야만, 오른쪽 뇌의 시각 피질에서는 왼쪽 시야만 처리할 수 있습니다.






  1.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는 감각일수록 중요하다는 사실을 몇 주 전 깨달았습니다. 내이에 염증이 생기니 세상이 핑핑 돌아서 밖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괜히 뇌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은 덤이구요. [본문으로]
  2. 고유 감각이 사라졌을 때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는, 올리버 색스의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한국어판_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한 토막에 잘 나와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동작을 할 때조차 팔이 어디에 있는지,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일일이 확인해야 했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언제 발이 땅에 닿을지 알 수 없는 채 발을 내밀어야 했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