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전 글/일기(2011~)

일상이 찌질하다.

  이태껏 살면서 규칙을 벗어난 적이 있었나. 기억해보면 중학교 때 체육수업 땡땡이, 말고는 없다. 부모님께서 키우시기는 편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무단결석 한 번 없었다. 게임을 하느라 밤을 새 본적도 없다. 그랬기에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하일권씨 만화의 나일등마냥, 내가 걸어온 길은 아스팔트였다. 단지 자부심이 있다면 그것이 대한민국 중산층에서 시작한 오르막길이었다는 것, 앞만 보고 정말 힘들게 올라왔다는 것이다. 교육마저 세습되는 한국 사회에서, 최대한 부모님 지갑 걱정 안 해드리게 살아왔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한다. 물론 그마저도 재수하면서 말아먹었지만, 어쨌든 아스팔트길에서 한 번도 흙으로 내려온 적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은 사실이다.
  어찌보면 참 찌질한 삶이다. 앞으로 배울 것 많다, 겪을 것 많다 하지만, 내 머릿속 리스트에 적힌 일들이라봤자 지극히 좁은 각도 안이다. 그 각도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보란듯이 정상에 서리라 착각한다.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다고 웅얼거리지만, 적당히 억누르면 알아서 기어들어간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편하니까. 메뉴얼대로 따라가다보면 적어도 고장은 나지 않을테니까. 그 좁디좁은 각도 안에서도 여태껏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어 하고 있는 내 삶이 찌질하다. 세상 360도에서 몇 도나 발을 내딛었을지 모르면서 다른 각도의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심지어 경멸하며, 나 자신이 혹시라도 그 쪽으로 벗어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는 내가 한심하다.
  각도 밖의 사람들은 두렵다. 가까이 하려다가도 알고 피하게 된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각도 안의 사람들마저 두려워진다. 아니, 내가 나와 같은 각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했던 사람들이다. 내가 바라본 각도 안에는 결국 나 혼자뿐이다. 스스로가 틀을 만들어 나를 가두고 있으니, 나 외에 있을 사람은 없다. 웃고 있으면서도 경계하고, 속으로 평가하게 된다. 가장 찌질한 건 나 자신이다.
  경험한 삶이 너무 적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왜 나는 더 많은 경험을, 더 넓은 각도를 넘어갈 시도조차 하지 못하나. 안주하면 뒤쳐지는 끝없는 오르막길, 그마저 앞으로 가기 벅차다는 변명인가. 넓은 각도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수많은 삶의 선배들을 못본 체 하고 자신의 편협한 길을 계속 고집할 것인가. 과연 후에 내 삶을 바라볼 때 후회없다 얘기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고민조차 할 시간 없이, 그렇다고 오늘 나머지 시간 최선은커녕 한없이 한심하게 지냈으면서도 이런 고민들을 기말고사 준비라는 빌미로 유보하는 나는 얼마나 찌질하게 삶을 살고 있나. 일상은 처절하게 찌질하고, 나는 더없이 한심하다. 

'예전 글 > 일기(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성훈 선수 응원갑니다!!  (2) 2011.06.14
6월 12일자 반나절까지 후기  (0) 2011.06.12
6월 3일 일상 후기  (2) 2011.06.04
방학 목표나 세워봐야지  (0) 2011.05.29
5월 27일자 일상 후기  (2) 201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