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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일기(2011~)

6월 3일 일상 후기


1)  신변잡기의 글을 블로그에 쓰기 시작한지도 대충 한 달이 지났습니다. 장점을 꼽자면,

1. 펜보다는 키보드가 쓰기도 쉽고 나중에 수정하기도 쉽다.
2. 일기장에 쓸 때보다 자주 쓰게 된다.
3. 제 나름의 형식을 지키려고 '노력'은 한다. 

반면 단점도 존재합니다. 

1. 일기를 쓰려고 놋북을 켰건만 다른 데로 빠진다-_-;
2. 그래도 '공개할만한' 글만 쓰게 된다. 이른바 자기검열, 비공개로 쓰는 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
3. 짤막짤막 생각나는 아이디어(?) 등을 기록하지 않게 된다.
4. 아무도 달지 않을 댓글을 기다려본다..(..)
 

그래도 장점- 1, 3 덕분에 펜으로 읽지도 못할 글자들을 써내려가는 것 보다는 여기에 쓰게 됩니다.
읽을 사람이 미래의 저 뿐이라 할지라도, 반듯반듯한 화면이 더 보기 좋겠죠.



2) 감기기운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여름이라고 반팔만 입고 다닌게 잘못이었을까요.
한동안 목이 칼칼하더니 오늘은 맑은 콧물이 자꾸 나와서 난처했습니다.
워낙 칠칠지 못한 성격이라 휴지도 없고, 콧물은 계속 흐르고.. 참
기숙사에 두고있는 비타민제라도 잘 챙겨먹어야겠습니다. 학기가 끝나면 가 봐야 할 병원도 많구요.

해발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일교차가 심합니다. 제 주변 사람들, 모두 저한테 감기 안 옮도록 조심하세요.

3) 학교 본부에서 강연을 듣고 나왔습니다. 인류학과 분들이 강연듣는 사람들 야식으로 파닭을(!) 시켜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야 원래 (강의가 아닌)강연 듣고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강연도 듣고 파닭에 딸려오는 감자튀김도 먹고 와서 참 좋았습니다. 국사학과 정용욱 교수님의 현대사에서 언론 왜곡이 미친 영향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조중동의 왜곡이 확실히 와닿는 요즘, 참으로 시의적절한 주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연 초반 신탁통치 부분에서 너무 질질 끄는 바람에 용두사미격으로 끝난 점도 없잖아 있었지만, 아는 건 없고 배울 건 많은 새내기에게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는 신문. 그 안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읽는 우리가 깨어있어야 한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단연 사회과학과 인문학적 지식을 많이 쌓아야 한다. 아아, 역시 결론은 배움이었습니다. 남들 세 시간 잘 때 두 시간 자면서 공부해야 한다구요. 맞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럼에도 그 자리, 학생들이 점거한 서울대학교 본부 1층 돗자리에서 강연을 들으며 저는 찜찜한 생각을 버릴 수 없없습니다. 누군가는 새내기니까 하는 철없는 고민이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의 탐구 강의 첫 시간에 들었던 정체성의 위기의 시작일 수도 있구요. 제 고민은 '기말고사를 앞두고 이런 걸 듣고 있어도 되나?'였습니다.
  제가 앞으로 하려는 일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필요없을지도 모릅니다. 세상 모르는 소리라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까이 '몰입'을 쓰신 공과대학 황농문 교수님만 하더라도 자신의 일에 완전히 파묻혀, 인류 역사의 방향을 바꾼 숱한 과학자들과 같은 일을 하는 삶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셨으니까요. 지금은 그나마 여유로운 편이지만, 대학원생이 되고 연구원이 되면 될 수록 제 일에 묻혀 사는 날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결코 만만치 않은 길입니다. 많은 걸 배우고 머릿속에 남겨야 합니다. 학부생 1학년, 지금 배우고 있는 지식이 가장 기초가 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때보다도 공부를 대충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동시에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이면 이 정도는 알아야지'라고 생각되는 분야가 너무 많아보입니다. 21살. 참고서 요약만 달달 외우고 산 인생. 인문학적 지식도 전무, 사회학적 지식은 심리학 찌라시 정도. 대체 얼마나 배워야 세상 윤곽이나마 보일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강연을 다니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조금이라도 눈이 트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정말 '살아있는 지식'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을 북돋기 위해 찾아오신 교수님,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돗자리를 꽉 채우고 뒤에 서서까지 강연을 듣는 학생들. 이런 게 진짜 대학이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말고사를 앞둔 요즘, 점거중엔 본부에 찾아가 이런 걸 듣는 게 과연 옳을 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목표를 교수로 잡은 이상 캠퍼스 생활의 우선순위는 학점으로 둬야 하고, 그 학점은 제 노력에 정비례해서 올 것은 확실합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모든 노력을 공부에 걸어도 모자랄 판에 중앙도서관이 아닌 본부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과연 이게 옳은 것인지 고민이 듭니다. 물론 저는 서울대학교의 일원으로서,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날치기로 통과한 법인화 법이 폐지되기를 바라고, 이 바람이 비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소통하지 않는 본부에 총학생회에서 마지막으로 든 점거라는 카드도 지지합니다. 참여하지 않는 바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양심이며 위선이라고 생각해서 본부에서 담요를 덮기도 했구요.
  어쩌면 기말고사 일주일 전에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이 제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목표하는 인생을 향한 한 걸음 대 세상에 참여하는 한 사람. 두 가치가 이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온 적은 지금껏 없었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 셈입니다.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저는 일주일 앞 기말고사를 택하겠습니다. 
중앙 도서관은 본부 소음이 시끄러우니, 앞으로는 농학 도서관에 다닐 생각입니다.
지금도 본부에서 밤을 새고 계신 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합니다.
오연천 총장님께서 6월 6일에 제대로 된 회의를 제의하셨다는데, 제발 그 때 약간이라도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학교가 더 이상 저 같은 학생들을 만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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