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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일기(2013~)

2013.2.7

  펜으로 글을 쓰면 내 손이 너무 느려 생각을 다 받아적을 수 없다. 글을 쓰고 있는 문장 사이사이에 다른 생각이 떠올라 내 일기장의 글은 삼천포로 흘러가곤 했다. 그렇다고 매번 생각이 날 때마다 한글이나 워드를 열고 쓰기도 귀찮았다. 시도는 해보았지만, 내 문서의 '글' 폴더에 남은 파일은 별로 없다. 

  결국 다시 블로그로 돌아왔다. 생각을 남기기에는 글이 최고고, 글을 쓰기에는 여기만큼 정리하기 좋은 곳도 없다. 키보드에 화살표만 몇 번 누르면 마음에 안 드는 문장은 수정도 가능하다. 일기장에 일기를 쓰다가 블로그로 돌아오니 새삼 기계의 편리함에 감탄한다.


  지난 포스팅을 정리한다. 벌써 재작년이다. 포스팅이라봐야 끄적거린 일기와 그림, 만화들이다. 그 때는 기숙사에 살아서 글 쓸 시간도, 그림 그릴 시간도 많았다. 1학년답게 수업도 쉬운 탓에 호흡이 긴 만화도 연재할 수 있었다. 지금 보니 포부만 큰 글도, 연재가 멈춘 만화도 부끄럽다. 폴더 하나에 싹 몰아넣고 잠그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일단은 비공개로 돌려놓았다.

  

  '블로그를 운영'할 생각은 없었고, 남에게 보이려고 글을 쓰지도 않았기에 댓글은 많지 않았다. 재밌게도, 그 중에서도 정치 냄새가 약간 풍기던 글에서는 댓글이 하나씩 달렸다. 의견을 적기보다는 어디어디를 갔다, 학교에서 누구의 강연을 들었다 같은 글이었다. 댓글은 당연한 듯 삐딱한 시비조였다. 삐딱한 댓글에 나도 삐딱하게 답글을 달았다. 물론 본문이든 답글이든 지금은 다시 읽기도 부끄럽기만 하다. 읽다가 화가 날 만도 했겠다 싶다.

  블로그를 일기로 쓰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을텐데, 다들 이런 생각을 해보았으려나. '나의 미성숙한 생각을 남에게 보여주어도 될 것인가.' 이 같잖은 글을 읽을 사람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이 내 글을 읽고 '혹시라도' 마음이 움직이거나 그것을 넘어 행동이 변화하거나, 내 허접한 생각을 자기 의견으로 삼는다면(!) 나는 얼만큼 책임을 져야 할까. 꼭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내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마음은 도서관에 일기장을 두고 오는 것과 비슷하다. 중앙도서관 3열, 칸막이가 없는 책상에 덜렁 일기장 하나만 펼쳐놓은 채 잠깐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오는 기분이다. 나는 지금도 이런 글은 아무도 읽지 않으리라고, 누가 책상에 남의 일기장을 읽을만큼 한가하겠냐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삐딱한 댓글을 떠올려 보면, 실제로 읽는이는 분명 존재하고, 그가 내 일기장의 충격적인 악필에 비명을 지르다 도서관에서 쫓겨난다면, 그 비극은 일기장을 펴 놓고 나간 내 책임이다.


 모든 글마다 '개인적인 글입니다. 설득되지 마세요. 제 생각입니다. 저는 책임 못 집니다. 사실은 문장 연습이에요, 내용을 보지 마세요' 라고 적기는 싫다. 포스팅은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다. 내가 공개로 해 놓고서는 읽지 않은 걸로 해달라 사정하기는 비겁하다. 이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는 이렇다. 당장 내일 부끄러워 지우더라도, 쓰는 지금만큼 내 생각에 당당할 글을 쓰자. 그리고 최선을 다해 글을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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