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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일기(2013~)

2013.2.9

  기록하지 않는 일상은 어떻게 남을까.


  일기를 쓰는 날보다는 일기를 쓰지 않는 날이 훨씬 많다. 일기를 쓰더라도 모든 일상을 다 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기록하지 않은 수많은 날은 내게 어떻게 남을까.


  오늘은 과방에서 토플 공부를 했다. 스피킹 연습을 해야 돼서 도서관에는 갈 수 없었다. 날이 밝을 때는 야상을 입고 담요를 덮으니 어느정도 따뜻했는데 해가 지고나니 점점 추워졌다. 손이 시려워 화장실에 가서 따뜻한 물로 손을 녹이려 했지만 휴일이라 그런지 차가운 물만 나와 손만 더 얼고 말았다. 핸드폰에 손난로 어플을 받았지만 작동이 잘 되지 않았다. 차라리 복잡한 게임을 받을 걸 그랬다.

  스피킹 실전 한 회를 녹음하고, 녹음한 파일을 들었다. 녹음 파일 속 내 목소리에는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계속 듣고 있자면 한국어까지 말을 더듬을 것 같다. 20분 문제를 풀고 그만큼 복습한다. 

  리딩 지문을 풀고, 채점한다. 다 맞는 문제는 마지막 요약 문제에서 틀리고, 요약 문제가 맞으면 다른 세세한 문제에서 틀린다. 글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모든 문제를 다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왜 하나가 맞으면 다른 하나는 꼭 틀릴까. 다행히 마지막 지문은 다 맞았다 싶었는데 마지막 지문이 아니었다. 모르고 지문 하나를 안 풀지 않았다. 오늘치 리딩은 이만하면 됐다, 저 지문은 어차피 더미다, 하고 스피킹 한 회를 더 녹음하고 점검했다. 스피킹을 다 하고서는 단어를 외웠다.

  계획상 내일이면 해커스 초록 보카를 두 번 본다. 이중에 몇 개나 남을지는 모르겠다. 처음에는 3일치, 두번째는 6일치씩 본다. 처음에는 영단어를 보고 뜻을 외운다. 며칠 전에 산 학생 수첩으로 뜻을 가리고 생각해본다. 다 읽었으면 다음에는 뜻을 보고 단어를 되뇌인다. 과방에서 혼자 외우다보니 마음껏 말할 수 있어 편하다. 한 이틀치쯤 외우다보면 잠이 온다. 30분에서 길면 두 시간까지 그대로 자는데, 오늘은 너무 추워서 그런가 오래 잔 것 같지는 않다. 자고 일어나서 남은 단어를 외운다. 전에 학원을 다닐 때 받은 단어장 프로그램으로 한 장에 6일치 시험지를 인쇄했다. 50개 문제 중에 적게는 두 개, 많으면 일고여덟 개 씩도 틀린다.

  외웠던 단어인데 지문에서 봐도 뜻이 생각나지 않으면 화가 난다. 오늘은 그보다는 다른 경험을 했는데, 틀린 문제 단어가 오늘치 단어장에 나왔다. 2회차로 외우고 있었으니 이미 본 단어인데 기억도 나지 않았다. inimical 적대적인. 여기다가 적으면 잊어버리지는 않겠지. 니미! 하고 적대적으로 나서는 사람을 상상하자.

  그래도 확실히 단어를 외우니 라이팅 할 때 어려운 단어를 쓴다. 용례가 맞을지는 잘 모르겠다. 언니 계정으로 라이팅 인강을 받아놓긴 했는데,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그래도 꾸준히 쓰고 학교에서 첨삭도 받고 있어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

  중간에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할머니를 바꿔주셨다. 찾아뵀어야 하는데 죄송했다. 할머니한테 죄송한게 아니라 부모님께 죄송했다. 할머니가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그래도 명절을 쇠셨다. 고향집에 두 분만 있었다면 명절에 적적해서 어떡할까 걱정했는데, 시골에 내려가 계셨다. 그러고보니 시골에 내려가셨는지도 전화를 받고서야 알았다. 설날에 안부전화는 내가 먼저 드렸어야 했는데.


  집에 와서는 우쿨렐레 동아리 포스터를 수정했다. 동아리 사람들은 피드백이 적극적이다. 좋다. 과에서 무언가를 그릴 때는 그리고 허공에 소리치는 느낌이었다. 동아리에는 감각있는 친구들이 많고, 남의 일이리고 떠넘기지도 않는다. 내 일을 하는데도 훨씬 재미있다.

  하지만 연습실을 예약하는데는 실패했다. 열두시에서 10분 넘었을 뿐인데, 다른 사람이 먼저 예약을 했다. 외부연습실은 어떻게 잡을지 막막하다.





  1월 1일부터 방학을 이렇게 보냈다. 40일 남짓한 일상이 거의 똑같다. 수업을 듣거나, 단어를 외우거나, 혼자 문제를 풀거나.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운동을 했다. 중간중간 딴 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기록할 필요가 없는 일상이었다. 무엇을 배우기보다는 쳇바퀴만 돌았다. 반복되는 상념은 머릿속에 소설을 지어내거나 과거를 관념으로 굳혔다. 


  참 쓸 것 없는 하루하루다. 그렇다고 어떤 변화무쌍한 날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이 공부도, 내가 하고싶어 하는 일이다. 불평할 것도 없다.


어차피 얼마나 길게 쓰든, 오늘 하루를 전부 다 기록하기는 불가능하다.

기록하지 않는 일상은 날아가겠지만, 이렇게 기록한 일상도 기억에서는 날아가기는 마찬가지이다.

기록하지 않은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면 그 기억은 이미 일상이 아닐테다. 일상이 아닌 날이 계속되면,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다행히 시험은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으니, 이 일상도 조금 있으면 끝난다, 끝났음 좋겠다. 90점 넘기고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다. (언젠가 유학을 갈 때는 토플이 아니라 GRE를 보겠지 싶다. 그 땐 영어가 좀 더 쉬워지면 좋겠다.) 일기를 쓰면서 희망하기에는 너무 안일한 바람일까.




+공부는 지루하고 바쁘다는 글을 쓴 새벽에 블로그 수정이 왜 이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다. 폰트를 바꾼 건 이해가 되는데 페이스북 플러그인은 왜 설치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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