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전 글/일기(2013~)

2013.2.22

  글을 쓰면서 이따금 쓰고있는 글을 살핀다. 문장이 계속 똑같은 말로 끝나지는 않는지 확인한다. 너무 같은 낱말만 쓰는 듯하면 다른 낱말로 바꾸기도 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켜서 유의어를 찾아본 적도 가끔 있다. 하다못한 이런 일기라도 쓰다보면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기에 일부러라도 컴퓨터를 켜서 이렇게 일기를 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자질구레한 손보기로는 글을 쓰는 역량이 크게 늘지는 않는다. 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끄적거린 글에 가끔 '잘 쓴다'는 말을 들을 때면, 문장 하나하나를 공들여 썼다기보다도 남들도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쓴 경우가 많았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문장 구조나 낱말을 손보는 일은 좋은 카메라를 사서 잘 관리하는 것이다. 성실한 찍사의 자세다. 하지만 사진 작가들은 남들이 생각않는 평상시에도 어느 장면, 어떤 구도가 좋을지 주변을 살피다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마찬가지일테다.

  소재를 찾는 일은 글을 쓰는 사람이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나 똑같이 중요하다. 그러니 가방에 카메라가 들어있든 집에 가서 키보드를 칠 생각을 하든 간에, 제대로 무언가를 만들려면 순간을 잡을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글은 사진처럼 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니 사소한 일에 넘어가지 않고, 깊이 생각하고, 무엇보다 직접 글로 써 보아야 한다.

 

 

  광주에 온지 이틀째다.

  책장에 있는 책 중 절대 안 볼 책들을 시내 헌책방에 가서 팔고 친구들을 만났다. 책을 판 돈으로 친구 생일 선물을 사주었다. 시내를 구경하다 오락실에 가서 자잘한 게임도 하다가, 친구들 가는 안과에 가서 공짜 커피를 마시고 돌아왔다. 약국에서는 공짜 코코아도 두 잔이나 마셨다.

 

  친구들과 헤어져서는 엄마 가게에 기서 일손을 거들었다. 요즘에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가게를 대신 봐드리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옷을 팔겠다는 거창한 욕심은 없었고, 그냥 집에서 엄마가 조금 쉬기를 바랐다.

  장사를 할만한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게에 들어가면 점원에게 휘말리는 성격이다.(깎지도 못하고, 물어보고 바로 나오지도 못한다.) 입에 발린 말을 하지를 못한다. 거기에 지하철에서까지 들리는 '고객'이라는 말도 어색하다.(탈것에는 당연히 승객이라고 써야지!) 이러는데 어떻게 입에서 '고객님'이라는 말이 떨어지고 무언가를 팔 수 있겠나.

  과연 몇몇 사람들이 와서 옷을 봐도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사람들을 모른척하고(!) 컴퓨터를 하고 있으니 다들 조금씩 옷을 보다가 가버렸다. 이야말로 불효가 아니고 무엇인가! 다음번에 사람들이 왔을 때는 무슨 상품을 찾느냐고 물어보며 어색하게나마 다가갔다. 그 분들은 보고만 있다고 말하고서는 제 갈길로 사라졌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고객님'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옷을 팔기는 팔았다. 나처럼 샌님같은 사람이었다. 저번에 산 바지와 같은 옷을 사야 된다면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맞는 옷이냐고 물었다. 그 분이 가신 다음에는 옷을 팔뻔한 사람도 들어왔다. 딸 옷을 고르는 사람이었다. 이때부터는 나도 따님이 어디 학교 다니냐, 요즘 학교는 어떠냐 말을 걸기도 했다.

  옷을 판 시간보다 농땡이를 피운 시간이 훨씬 많긴 했지만, 분명 가치있는 경험이었다. 좀 더 오래, 열심히 하다보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얼마나 살갑게 대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사람을 대하는데 항상 서투르다. 친구에게 '너는 사람을 많이 못 만나본 것 같다'는 말도 들었을 정도이다. 이런 내가 가게에 몇 시간 있다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한테 말은 꺼내보았다. 지금부터 3년동안 이 일만 해도 매대 앞 마네킹보다 사람을 덜 끌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은 가게에는 도움이 안 되어도 나한테는 도움이 될 것 같다.

  광주에 오래 있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가게에 있고 싶다. 그게 편찮으신 엄마한테도 훨씬 낫다(매상보다는 건강을 걱정하실 때다). 서울에 올라가서도, 공부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해야겠다. 과외 말고 다른 일로도 돈을 벌어야겠다.

  나는 원래부터 시야가 좁은 사람이라, 의도적으로라도 새로운 경험을 많이 겪어야 한다.

  어디서 '깊은 사람'이 되어야 할지는 잊지 않았다. 그 이전에, 좀 더 넓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 글 > 일기(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3.3_새학기준비  (0) 2013.03.04
2013.2.24  (0) 2013.02.24
2013.2.16. 토플 시험  (0) 2013.02.16
2013.2.9  (0) 2013.02.11
2013.2.8  (0) 2013.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