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논때문에 논문 찾는 일이 많아졌다. 리뷰 논문을 쓰는데 리뷰 논문을 보는 안습함은 학계는커녕 과제 하나에도 몸을 사리는 학부생에겐 당연한 비참함이다. scholar.google.com에 며칠 있었더니 왜 네이처의 IF가 40이 넘는지 알겠다. 그곳에 실리는 리뷰 논문은 논문이라기보단 대가가 쓴 교과서의 단락처럼 알차다. 그런데 왜 나는 내 논문에 글자 수도 채우지 못하고 그 알찬 논문들도 한 두 문장조차 넘기지를 못할까. 논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영어가 딸려서일까, 집중력이 딸려서일까, 모니터 너머의 글자에 눈이 부신 걸까 한국어 웹 페이지가 너무 재미있어서일까.
과학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평생 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평생이든 몇십 년이든 좋아할 다른 일은 아직 찾지 못했다.
사람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어떻게 살겠냐, 맞는 말인데, 몇 년도 아니고 평생을 살면서 좋아하는 일을 마음 한 구석에 덮어가며 살고 싶지는 않다. 내 삶인데 그 정도 욕심도 못 내나.
확실히 직장을 다니는 선배들은 다르더라. 나라면 엄두도 못 낼 지출에도 아낌없다. 나도 돈을 많이 벌면 실패해도 되는 옷을 사고, 후배 여럿에게 부담없이 한 턱 쏘고, 면허를 따서 차도 사고, 그렇게 살 수 있으려나. 별로 끌리는 삶은 아닌데, 장난감을 많이 살 수 있다는 점은 부럽다. 아니다. 이건 그저 아직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부러움일 뿐이다. 소유하고 나면 사라질 동경이다. 어른이 된 후 사온 장난감 중에 제대로 갖고 논 게 있었나. 뜯고 붙이고 만드는 건 좋아하지만 그렇게 만들고 나면 어디에 쳐박아도 모른다. 나에게 과정이 아닌 소유 자체로 흐뭇했던 장난감은 아직 없었다. 아무리 재밌게 읽었어도 그 때 한 번 읽고서 책장에 넣어두는 책처럼.
그렇다면 취업과 진학을 비교할 다른 기준은 시간이다. 온전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사실 어느 쪽도 무리해서 내 시간을 갖지 못할 법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양쪽 다 내 시간을 지키지도 못할 것 같다. 소심한 내게 칼퇴는 무리요, 일을 남길 바에야 주말에 일하는 게 마음이 편할테니까. 하지만 '시간 소요'라는 기준에 둘의 결정적 차이는 '일'에 쓰는 시간이 전자는 남을 위해서, 후자는 자신을 위해서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내리는 결론. 취업은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일이요, 대학원 진학은 젊은 내가 지금 벌 수 있는 돈을 써서 내 위한 시간을 갖는 일이다.
요새 나는 가난하다. 매달 나오는 소액의 장학금에 저번 방학 때 연구비로만 살기는 버겁다. 이런 생활이 대학원 가서까지 계속된다면 살 수 있을까. 바라는 건 세끼 학식에 내가 좋아하는 일 하는 소박한 생활인데, 그마저도 안 되는 건 아닐까 무섭다. 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건만, 돈이 없어서 힘들 때가 되면 정말 어떡해야 할까. 더 이상 가족에게 손 벌리기도 싫은데...
졸업은 다음 학기, 이미 결정은 내렸다고 생각했었다. 룸메이트의 취업 준비 이야기가 남 이야기로만 들렸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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