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전 글/일기(2013~)

10월 4일 후기

"계속적인 내면의 성찰은 자신의 행동, 갈망, 동기에 대한 민감도를 높인다. 자신의 실수를 찾아내고, 이를 없애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한다. 그러려면 무의식적 동기를 의식적 세계로 끌어와야 한다."- 크리스토프 코프, '의식'




일기를 쓰지 않는 핑계거리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1. 일기를 쓰기에 너무 바쁘다.


2. 일기를 쓰기에 문장이 너무 안 나온다.


3. 일기를 쓰기에 일상이 부끄럽다.




1번에 대해 말하자면,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신경생리학 연구실 랩 미팅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다. '하루에 랩 노트 쓰는데 30분 이상 걸리지 않는 사람은 발전이 없을 것이다' 이제 통학 시간 두 시간이 하루에서 빠졌으니, 하루에 한 번이 힘들다면 사흘에 한 번이라도, 적어도 주말에 한 번이라도 글을 쓰도록 하자.


2번은 항상 하는 생각이다. 내 문장은 항상 틀에 박힌 채다. 게다가 요즘에는 일본어까지 접해서(차마 '배워서'라는 말은 못 쓰겠다. 이유는 후술) 괜히 글 같지도 않은 번역투 문장이 나올까 무섭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세 조건이라는 다독, 다작, 다상량은 요즘은 특히나 먼 이야기이다. '한국어로 글 잘 써봐야 뭐해'하는 생각까지 드는 걸 보면, 삶의 의욕 자체가 예전보다 다섯 걸음쯤은 후퇴했다.


3번이 본론이 될테니 이야기를 길게 풀어보자. 나의 일상은 어떻게 부끄럽나.


3.1. 귀국하고 나서 나의 생활


3.1.1. 연구실 인턴

  귀국하자마자 컨택했던 연구실에 들어가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인턴 생활 고작 한 달 반을 하고서 '어쩌면 나도 연구가 꽤 체질에 맞는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얻기는 했다. 거기에 '내 연구 과제가 있다면 랩노트도 훨씬 열심히 쓰고 논문도 열심히 읽겠지?'라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생각(지금 졸업 논문 준비 하는 태도를 보면 대학원 진학 후의 내가 보일 테다.)과 '이 연구실에 남은 20대를 바치면 나는 학문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대학원을 고를 때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연구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린 다음에는 순전히 개인의 노력에 달린 문제이다)은 덤이다. 미래의 불안감을 떨쳐내고 보면, 어찌되었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즐거움은 하고 싶은 일의 각도가 약간 틀어져 있을 지언정 크게 줄지는 않는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경험은 하고 싶은 일의 각도를 넓힌다.



3.1.2. 개강 이후 수업

  개강 이후 내가 듣는 수업은 총 6과목 19학점이다. 시험 기간이 아직 오지 않은 시점에서 강의에 대한 평가를 내려본다.

  •  경제동물은 노코멘트. 오늘 발표가 끝난 것이 감개무량하다.
  •  신경생물학은 내 학습 역량에 알맞은 수업다운 수업이다. 저번 주 경제동물 실습으로 하루 쉴 줄 알고 걱정했는데(교수님이 하루에 두꺼운 신경과학 책을 두 챕터씩 나간다.) 딱 그날 휴강이라 운이 참 좋았다. 수업은 복습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든 분량인데, 저번 주 휴강했다고 또 한 챕터 복습이 밀렸다. 월요일이 오기 전에 얼른 끝내야지. 무엇보다 대학원 생활에 기반이 될 지식을 배운다고 생각하니, 하나하나 제대로 배워야겠다 마음을 다잡게된다.
  • 생화학은 재작년에 첫 시간 듣고 바로 드랍했던 강의인데, 의외로 재미있다. 교수님께서 일부러 재미있게 말을 꾸미지는 않지만, 원리를 듣고 반응을 보니 왜 이렇게 되는 지 깨닫는다. 작년 영양학 강의 때 회로를 외웠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다만 복습을 제대로 안 하고 있다. 저번 시간에 중간고사 날짜가 갑자기 나와서 그저 어안이 벙벙하다. 공부해야겠다.
  • 식품학은 아침마다 자고 와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ppt도 뽑아놓고 안 가져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렇게 수업을 들면 망한다는 것만 알겠다.
  • 컴퓨터 프로그래밍 개론은 중학교 때 C를 했던 깜냥으로 버티고 있다. (하루를 인터넷만 하고 생으로 놀았는데도 다음 수업에 무리가 없었다.) 2주 연속 휴강이라 과제가 나왔는데 이것도 끝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 이상심리학은 교수님 설명이 찰지다. 저서인 교과서도 재미있게 읽힌다. 다만 대형강의라 강의실에 실시간으로 이산화탄소가 차올라서...라는 변명으로 졸릴 때가 많다. 지금은 재미로 읽고 있는 내용을 중간고사를 위해서는 달달 외워야 하니 눈앞이 깜깜해진다. 

    심리학과에는 강의력 좋은 교수들이 참 많다. 교수들의 강의 수준이 높은 이유는 사회대라는 특성 및, 외부 전공 학생과 교류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대 게시판에  '호암 교수회관에서 평범한 주스를 비싼 무가당 주스로 바꿔 파는데 분노를 느낀 13학번의 자보'가 있었다. 자보를 읽으며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를 느끼는 그 감수성과, 그것을 표현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에 감탄했다. 여기에 타 전공 학생들의 '외부인 시각'도 크다. 그 사람들 보기에 영 아니다 싶은 강의는 바로 드랍하면 되니까. 타 전공 학생들이 몰려들면서 대형 강의의 장점도 갖춘다. 교수와 수강생 간의 매마른 관계가 강의력에는 좋은 점이 분명히 있다. 

3.1.3. 졸업논문


  학기가 시작되며 졸업논문 작성을 시작했다. 전공 분야를 훑는 사수 언니에게 반한 점 외에 진행 및 특이사항은 전무하다. 당신의 연구실은커녕 전공 분야로 갈 생각이 없는 학생의 마음을 읽고 최대한 비슷한 분야의 사수를 이어주신 교수님께 감사하고, 졸업 전에 뜬금없는 학부생 졸업논문을 맡은 사수 언니가 짱짱멋있고 고맙다. 내 감상과 상관 없이 졸업 논문 작성은 어서 진행되어야 한다. 다음주까지 자료를 조사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으니, 일단 내일 (논문을 읽기 최적의 장소인)연구실에 가서 자료 조사가 얼마나 힘든지 정신 좀 차려야겠다.


3.1.4. 취미생활(?)


  이미 이번 학기 최고의 걸림돌이다. 나는 '무언가 하나에 빠지면 정신을 놓는' 내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중독될만큼 재밌는 무언가는 일부러라도 피해다녔다. 그런 내가 나이를 24살이나 먹어놓고 왜 마법소녀가 나오는 백합 애니메이션에 빠져버렸는지(심지어 나온지 3년도 지났는데!)!! 학교 생활 중 취미생활이 없던 때는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인터넷에 뺏기는 시간이 원래도 많았는데 덕질까지 더해지니 공부를 건너뛰어도 하루가 부족하다! 여기에 나의 생산적 덕후(?) 본능은 자꾸 만화를 그리는데 뭉텅이로 시간을 쓴다. 취미는 좋지만 조금 조절하자.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정해야 할까. 아래 소주제는 '발전 가능한 건전한 취미'임에도 나의 발목을 잡는 것들.


3.1.4.1. 일본어


  덕질을 시작하니 일본어에 욕심나기는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으로 유학 갈 일도 없는 내게 일본어는 덕질 외에는 쓸모가 없는 언어다. 애니를 듣거나 만화 대사를 읽으며 한 두마디 알아듣는 재미는 쏠쏠한데, 이 공부가 과연 나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더욱 중요한 이유. 같은 시간을 취미에 투자하면 자연스럽게 일본어 공부보다는 직접적인 덕질을 택한다. 헌책방에서 산 일본어책 지못미)  즉슨, 따지고 보면


덕질->일본어를 배우면 덕질이 좀 더 재밌겠네->일본어 공부->깊이있는 덕질


이러한 악순환(?)을 겪을 게 눈에 뻔한데, 어디서나 발현되는 공부 본능을 굳이 여기서까지 부릴 필요가 있을까. 배워서 남 줄 일 없고 배워서 버릴 것 없지마는..


3.1.4.2. 그림


  당연하다. 만화를 그리다보면 그림 실력에 욕심이 난다. 나는 기억이 남은 때 부터 이 욕심이 없던 때가 없었다. 크지는 않았다. 그게 컸다면 미대를 갔거나 지금이라도 웹툰 작가라도 꿈꾸고 있었겠지. 내가 원하는 그림 실력은 딱 '취미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정도'이다. 당연하지만 소박하게 말한다고 해서 쉬운 일은 아니다. 욕심 부릴 일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항상 내 그림에 불만족스럽다. 책도 몇 권 사서 읽었지만 그림에 적용할 때는 당장 책을 읽는 순간 뿐. 

해결방법 1) 포기하고, 지금부터라도 만화를 그리고 싶으면 선에 신경쓰지 않고 빨리 갈겨서 올려라. 아마추어 만화에 누가 그림을 보겠어.

해결방법 2) 4년 동안 눈여겨 본 동아리에 들어가서 그림과 덕질 활동을 시작한다. 근데 동아리 부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덕력이 그다지 높지도 않다더라.

다만 동아리에 들어가면 그림에 드는 시간이 더 많아질테니 그게 걱정이다. 



결론. 하고싶은 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구나.




3.2. 앞으로의 계획



  글을 쓰다보니 정신을 차려서 중간고사 날짜를 핸드폰에 넣었다. 신경생물학을 빼고는 전부 2주 후에 몰려있다. 


10월 둘째 주) 일단 내일 졸업논문 자료를 찾고, 신경생물학 밀린 한 단원 복습하자. 월요일에 이상심리 책을 읽고, 식품학이 더 이상 밀리기 전에 정신차리고 공부를 시작하자, 수요일쯤?. 경제동물은 최윤재 쌤이 어떻게 할지 아직 모르겠다. 신경생물학은 언제나 그렇듯 월요일 한 단원, 금요일 한 단원. 생화학이 중요하다. 제대로 교과서를 본 적이 없다. 수, 목요일에는 시간이 꽤 남으니까 졸업논문 더 찾고. 금요일에는 컴프개 과제를 잊지 말자. 할 일이 많지 않으니 욕심내서 3까지 할 수 있을 듯. 나는 관악사생이니까 여덟아홉시 쯤 들어오면 저녁에 운동 하고도 일본어 강의 하나 들을 시간이 난다. 하루는 단어, 하루는 문법 식으로. 어차피 시험도 보지 않으니 열심히 할 생각 말고 잠이 오면 바로 자자.


10월 셋째 주) 시험 기간 시작.


10월 넷째 주) 공포의 시험 기간.

'예전 글 > 일기(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10.12  (0) 2014.10.13
10월 11일 후기  (0) 2014.10.12
2014.04.23 후기  (5) 2014.04.24
내 생일 후기  (0) 2014.04.20
해외에서 두 달, 언어장애  (0) 201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