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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일기(2013~)

내 생일 후기

페이스북에 쓰다 정리가 되지 않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외국에서 맞는 생일은 여덟 시간 시차만큼 보너스를 받는다. 그 어제오늘 이틀을 생각 없이 친구들과 즐겁게 보냈다.

케잌을 먹고 친구 집에서 놀다가 자정에서야 돌아왔다. 페이스북에서 한국어와 영어로 된 생일 축하 메시지들을 읽었다. 

나는 인복은 있다. 내 주변 이들은 다들 좋은 사람들이다.


나밖에 모르던 내가 이곳 걱정 없을 낙원에서 그나마 얻은 교훈이 있다면, 

나 한 사람 행복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었다는 점이다.

항상 자신보다 나를 챙겨주시는 부모님. 마지막까지 내 편이 될 가족과 친하지 않아도 몰래몰래 챙겨주시는 친척들.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신 지도교수님과 내 소중한 시간을 그보다 더 소중한 지식으로 채워주신 교수님들.

수업을 외롭지 않게 해준 옆자리 수강생들과 동기들. 나 하고 싶은 공부 하는데도 기꺼이 나랏돈을 주신 한국장학재단. 

힘든 시간을 같이 버텨준 고등학교 친구들.

아일랜드 가는 길 걱정해주며 영어 한 마디 더 알려준 친구부터 

폴란드 타지에서 뻔뻔한 식객을 받아준 오랜 친구, 오늘 케잌과 이야기를 준 카자흐스탄 친구.

Hello 뒤에 How are you?를 붙여 자기들도 모르게 나를 궁지에 모는 여기 사람들부터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한 학창 시절 선생님들과 친구들까지.

나에게 목표를 준 과학책의 저자들과 나를 이야기라는 미로에 빠트린 숱한 소설과 만화와 게임 작가들. 

이 사이에서 길을 찾는 건 힘들지만 행복한 여정이다.

버스비가 아일랜드만큼 오르지 않게 해준 대한민국 공무원들.

학생이라고 가격을 깎아주는, 지금껏 성실하게 문화재를 보호해준 유럽 사람들.

내 보잘 것 없는 글과 그림에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 

고민 가득한 내 머리를 순식간에 비워주는, 너무 많이 비워내서 문제인 인터넷의 글쟁이, 그림쟁이들.

오늘이 지나봐야 고작 23년 산 삶에 나는 감사할 사람들이 정말 많다. 고작 나 하나가 누린 기회가 너무 많다.

이렇게 글로 행복을 정리하는 일이 미안하다.


모두 나만큼 행복할 이들이었다. 세상이 얼마나 재미있고 행복한 곳인지 알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주제에 현실주의자라고, 희망이라는 걸 믿지를 못한다. 기적을 바라는 일조차 위선으로 느껴진다. 미안하다.

나라 덕분에 온 타지에서 나는 분노할 자격도 없다. 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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