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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심리학

인간의 이해) '과학적' 논쟁의 함정

Kahan(2012)은 특정 주제에 대해 사람들이 배타적인 이유로 과학적으로 소통하기 힘든 환경을 든다. 사람들의 주장은 양 극단에서 대립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만큼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해 보인다. Kahan이 든 예시는 지구 온난화이지만, 한국에도 이러한 문제는 지천이다. 국민들은 10년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광우병을 기억하고, 아직까지도 일본 여행을 가도 될 지 망설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따금 과학의 힘을 빌린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은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익숙지 않다. 다른 논쟁에 비해 과학적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과학적 사실의 두 가지 특성에서 기인한다. 첫째, 과학적 지식은 귀납적이다. 경험적 현상에서 도출하는 과학적 사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확률적이고 반증 가능하다. 연역적으로 어떠한 가설을 검증한다손 치더라도 변인 통제가 되지 않는 현실에서까지 그 가설이 맞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둘째, 과학의 귀납적인 특성에 비해 그것이 지니는 권위는 지나치리만큼 무겁다. 과학적 사실이란 그것을 연구하는 전문가 집단에서 공인된 결과이고, 대중은 과학자의 전문성을 믿는 만큼 그들이 결론지은 과학적 사실도 신봉한다. 자신은 과정과 원리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파헤치지 못하지만 그 결과만큼은 ‘과학적’이므로 믿고 보는 것이다. 


과학적 근거의 두 가지 특성 탓에, 대중들은 과학으로 둘러싸인 중심 주장의 진위를 판단할 기회마저 박탈당한다. ’Met-Met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광우병에 잘 걸린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전자를 많이 가진 한국인은 광우병에 취약하다.’[각주:1] 라는 주장을 읽을 때, 사람들은 왜 Met-Met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광우병에 걸리는지도 모르고, 그 전에 Met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어려운 ‘과학적 사실’은 공인된 학회지에 실렸다고 하는 이상 맞다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복잡한 연구를 압축한 한 문장을 이해하지도 못할뿐더러, 두 문장 사이의 논리적 흐름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도 의심하지 못한다. 


악순환은 반복된다. 과학적 방법론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이해 관계에 맞아떨어지는’ 과학자들의 데이터를 인용한다. 여기에 ‘포도에 심해 물고기 유전자가 들어갔어요!’ 같은 감정적인 문장을 덧붙이면 금상첨화다. 똑같이 과학적 방법론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이해 관계에 맞아떨어지는’ 주장을 골라 과학적 근거가 있다며 그것을 믿는다. 


발전한 기술에 비해 대중들의 과학적 소통 능력이 이렇게나 뒤떨어지는 이유는 현 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과학이 지식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기술을 고안하고 가르치는 데는 가장 최신의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러한 ‘이공계적’ 사고를 뒤집으면, 기술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은 과학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우리 사회는 과학에 대한 이공계적 사고가 팽배해 있기에, 인문학은 교양이지만 과학은 전문 지식이란 생각마저 만연하다.


학교에서 모두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과학’은 그것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과정, 과학사와 역사 속 과학자들의 사고 체계, 그들이 행한 방법론이다. 이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가설 검증 과정에 대해 달달 외우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현상에 대해 직접 가설을 설정하고 증명하는 과정을 체험시켜야 한다.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산출되는지를 알면 결과를 종교마냥 신봉하지도, 그것을 가치 판단의 근거로 삼지도 않게 된다. 


다른 주제에서는 합리적이었던 사람들이 과학이 걸린 논쟁에서만 갈 길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과학적으로' 사고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더 많은 대중들이 과학 속에서 호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과학적 사고를 체화시켜야 한다. 


Kahan, D. M., Peters, E., Wittlin, M., Slovic, P., Ouellette, L. L., Braman, D., & Mandel, G. (2012). The polarizing impact of science literacy and numeracy on perceived climate change risks. Nature Climate Change2(10), 732-735.


  • 열심히 쓰다가 끝이 흐지부지 끝난 아쉬운 글이다. 어떠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데 교육적 방법만 생각날 때면 허무하다. 나는 정책 입안자도 아니고 신문 칼럼니스트도 아니기에 교육을 바꾸기는커녕 사람들의 생각조차 바꿀 수 없다. 
  • 물론 개인적으로는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나 또한 내가 과학적 사고를 완전히 체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내 연구를 수행하고 온갖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과학적 사고가 머리에 배지 않을까.
  • 혼자 과학적 방법론으로 글을 쓸 때 다른 사람들은 사회심리 이론을 꺼내며 글을 쓰고 있었다. 배경의 차이가 이런 것일까. 사회심리적 관점 또한 타당하다. 과학적 논쟁에 비합리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비합리적이니, 마냥 주제에 다룰 것이 아니라, 주제를 접하는 인간 집단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다. 


  1. 이 논증은 의도적으로 잘못 쓴 것이다. 유전자는 아미노산이 아니라 염기 서열에 의해 구성되며, prion 유전자와 광우병 발병률도 상관 관계이지 인과적 원리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국내에서 소고기를 잘못 먹어 인간 광우병이 발병한 사례는 아직 없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