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성(resilience)이란 삶의 역경을 극복하는 역량이다. 역경을 체험하는 가장 건전한 방법은 여행이다. ‘가장 건전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Seery(2011)가 논문의 말미에서 말했듯 ‘나쁜 것은 어쨌든 나쁘기 때문이다’. 삶의 탄력성을 높이고자 위험한 역경을 벌어서 겪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행은 사서 하는 고생 중 그나마 안전한 편이다. 무모한 시도나 끔찍한 불운으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비극을 제외하면, 여행의 고생은 여행 안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준비해 배낭을 맨 여행이라면,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해갔느냐에 전혀 상관 없이 여행길에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넘쳐날 것이다. 그러한 변수야말로 여행이 지니는 가치다. 요즘처럼 정보를 얻기 쉬운 세상에 이국의 풍경과 문화를 체험하는 일은 직접 가지 않고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낯선 곳에서 생기는 문제에 대처하는 것은 여행자만의 골칫거리이자 특권이다.
1년 전, 오로라를 보러 노르웨이 최북단에 간 적 있었다. 3월이 끝을 향해가는 일주일이었다. 태양의 활동은 활발하다 못해 여행 일주일 전 흑점이 폭발할 정도였다. 호스텔이 없는 마을에 직접 메일을 보내가며 숙소를 잡고 구글 스트리트 뷰를 보며 길을 외웠다.
도착해보니 태양의 활동과 상관없이, 두꺼운 구름이 하늘을 꽉 막고 있었다. 눈이 녹지 않은 언덕길을 올라 숙소에 도착했다. 밤이 되자 숙소에만 있기는 아쉬웠다. 오로라를 보러 옷을 두껍게 입고 마을 외곽으로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우박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걸어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야겠다 생각하고 정류장에 앉아 기다렸지만, 막차 시간이 끊겼는지 버스는 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우박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박이 언제쯤이나 그칠지 걱정하지도, 비싼 돈을 들이고서 즐기는 것이 궂은 날씨뿐인데에 실망하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자신보다 훨씬 큰 자연과 어찌 할 수 없는 실패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고, 그걸 느낀 자신에게도 새삼 뿌듯했다. 일생에 최고의 경험이 되기를 기대하며 다시는 오지 않을 극지에 왔건만, 그렇다고 꼭 오로라를 본다는 법은 없었다. 세상에는 노력 밖의 일이 이렇게 많다. 이제껏 노력의 보상이 있는 삶이 당연한 듯 살았지만, 사실 인간이란, 세상의 인과관계에 찍소리 못할 만큼 작은 존재이다.
그 때의 경험을 통해 삶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남과 자신의 실패에 더 관용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탄력성이란 개념조차 알고 있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그 여행으로 분명 나의 삶에 탄력성을 높였다.
역경이 삶의 탄력성을 키운다는 주장은 논증을 하기도, 실험적으로 증명하기도 불가능하다. 앞에서 든 일화 또한 반증 불가능한 개인의 경험일 뿐이다. 고난을 통한 성장은 경험적으로밖에 알 수 없다. 니체가 ‘그대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그대를 강하게 만든다’라고 남겼듯, 각자는 자신만의 역경을 통해 삶의 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
블로그에 썼던 여행기를 자가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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