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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일기(2011~)

8월 17~18일 비일상 후기


  '배수진'이라는 고사성어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만큼, 사람은 위기가 있을 때 기운을 차려 일을 끝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임은 '게임 오버'의 위기가 있어야 재미있고, '인강 제한 날짜'는 인강 회사의 상술이기 이전에 학생이 완강할 수 있는 요건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뒤의 땅을 파 물꼬를 틔어 일부러 제 뒤에 강을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지요. 누구나 이런 경험 하나쯤이야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독학이 실패할까 두려워 학원을 다니고, 모르는 사람끼리 제돈을 내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지요. 금연을 하기로 결심을 했으면 일단 주변 사람들에게 호언장담하는 게 첫 단계라지요.


  서울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참 별 것도 아닌 일들이 한 둘 겹쳤습니다. 주말이었으면 나았을텐데, 평일이다보니 평소 하던 과외때문에 빠듯해 보였습니다. 이 때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과외하는 학생에게 말하고 하루를 빠지는 것이겠지만 그런 건 '재미가 없지요.' 저는 17일 다섯 시에 광주를 출발해서 18일 세 시 반에 도착하는 계획을 머릿속으로 세웠습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버스로 대략 세 시간 반. 재밌는 시도가 될 것 같았습니다. 스릴을 즐기기 위해(?) 과외하는 학생의 부모님께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지요. 
   과외를 끝낸 후 집에서 대충 밥을 먹고 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다섯 시 반 고속버스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습니다. (개강을 앞두지도 않은 평일에 같은 시간 버스를 탄다는 건 분명 우연이니까요) 9시 쯤 버스가 도착해서, 둘의 방향이 서로의 대학교에 다음날엔 자기네 학교로 돌아온다는 여정까지 똑같아서 더욱 신기했습니다. 그 친구 목적지는 관악구 근처였고, 제가 가는 언니네 집은 성북구였습니다.
  10시가 넘어 언니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제 배낭의 무게를 책임지던, 광주에서 싸게 판다고 어머니께서 언니 갖다주라던복숭아들을 건내주었습니다. 복숭아 셔틀을 하려고 언니네 집에 온 건 아니었기에, 집에서 인쇄한 종이 한 장도 건냈습니다. 언니의 프린터는 1년도 더 전에 고장난 채로 처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니 컴퓨터로 광복절 특집 이육사 드라마를 보고, 잠이 오지 않아 동이 틀 때까지 언니와 다음날엔 기억도 안날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광주에서 방학을 보내면 붕 뜨는 느낌이다. 너도 이번 방학 때 아무것도 한 게 없지 않냐'  이런 얘기를 들었던 듯 싶습니다.
  아침이 되어 둘이서 맥모닝을 쳐묵쳐묵하고, 저는 곧장 학교를 항했습니다. 지하철로 40분 거리인 학교에 도착해, 오랜만에 기숙사를 들어가려는데 들어가는 방법을 잊어버려 주차장 안에서 혼란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기숙사에 맡아놨었던 선배의 카메라를 챙긴 후 단과대 행정실로 출발했습니다. 비가 왕창 와서 그런지 원래 산이었던 학교는 거의 정글이 되어있었습니다. 무성한 나무들과 사람 다니는 길을 침범한 풀들 사이로 매미소리가 귀를 메웠습니다. 학교 축제때보다 더 시끄럽던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중도에 있는 사람들은 단체로 엠씨스퀘어를 꽂은 기분일까 생각했습니다. 중도 터널 복도는 방학이라 대자보 한 장 없었고, 그나마 자보 붙여놓으라고 만들어놓은 게시판에 포스터나 자보 몇 장 숭둥그럽게 붙어 있었습니다. 중도 매점에 잠깐 들러, 과외하는 학생에게 갖다줄 공책과 뱃지를 샀습니다. 다섯 권 묶음 공책은 생각보다 비싸서, 잠시 이걸 꼭 사야하나 고민했습니다. 계산하려는데 현금 영수증 카드가 안 먹혔습니다. 제 뒤로 사람들의 줄이 길어져서 난감했습니다. 
   행정실에 가서 서류라기보단 종이 한 장을 내고, 이대로 가는 게 뭔가 아쉬워 과방에 들러 공책에 글을 쓰고 나왔습니다. 과방은 당연한듯 불 꺼진채 텅 비어있었습니다. 단과대 건물을 나오자마자 지하철역에 가는 버스가 저를 지나쳤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다음 버스 예정 없음'을 확인하고 행정관 앞으로 털레털레 걸어갔지만, 방학이라 셔틀버스도 운행하지 않는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결국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 기숙사 앞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11시에 터미널역에서 선배께 카메라를 갖다드려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그 때 마침, 핸드폰 요금이 미납되었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자동이체를 안 시켜둔 탓에 제 핸드폰 고지서는 기숙사에서 썪어가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기숙사 앞 마을버스를 타야하니 기숙사를 들러 고지서를 챙겼습니다. 정류장에 가는 길에 또 버스를 놓쳤지만, 마을버스답게 다음 버스가 일찍 와서 그걸 타고 지하철역에 갔습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선배에게 카메라를 전하고, 커피 한 잔을 얻어마셨습니다. 11시 50분 차표를 끊고 센트럴 시티를 돌아다녔습니다. 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빠듯해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버스에 가져왔습니다. 버스에 앉아 도착 시간을 계산해 보니, 세시 반에 과외를 시작하기는 좀 늦을 것 같았습니다. 그냥 만 원 더 내고 11시 25분 우등버스를 탈 걸 그랬나 후회하며 저는 제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결국 좀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일이 생겨서 오늘은 쉬어야 되겠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배수진을 쳤던, 이뭐병인 제 등 뒤에 제가 만들어놓은 쓸데없던 강은 모든 일이 끝나기 직전에 말라붙었습니다. 남은 건 세시간 반동안 버스를 타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여유롭게 집에 도착해서 비일상의 이틀 후기를 적을 수 있는 블로그뿐이었지요.


  애초부터 서울에 꼭 갔다올 필요는 없었다는 걸 알고는 있었습니다. 행정실에 내야 할 종이 한장이야 팩스로 보내도 충분하고, 선배의 카메라도 친구나 룸메이트에게 부탁해서 어찌저찌 해결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최후의 수단으로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배째라식으로 나가도 되었을 일이었습니다. 언니야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근처 피시방에서 인쇄를 하면 되고, 복숭아야..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님의 사랑은 택배로 보내는 김치로도 충분하니까요. 세시 반에 시작하는 과외는 빌미였을 뿐이었습니다. 배수진을 친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왕복 3만원, 결과에 비해 적잖이 피로를 불러오는 일에 괜한 의미를 넣고싶어 무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마저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 동안 광주에 있었다고 의미가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괜히 밤 늦게까지 인터넷을 뒤적이며, 오늘은 도 무슨 기자양반 동영상이 생겼을까, 누가 세종대왕 소스로 나를 웃겨줄까 무의미한 서핑질을 계속했겠지요. 언니가 한 말은 틀리지 않았어요. 저는 대학생 첫 방학을 붕 뜨게 보냈습니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다는 결론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알바같지도 않은 학원 일을 도맡아 하고, 괜히 관심없던 분야의 책을 전집으로 사서 하루에 한 권 씩 읽어치우고 덮자마자 잊어버렸어요. 이틀동안의 배수진 계획은 무의미해 지루한 일상에 의미있는 사건을 만들어보자는 마지막 분투였습니다. 그마저 '아무것도 아닌 일'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고속 버스 안 세 시간 반 동안 이틀, 정확히는 하루도 안 될 시간이 내게 준 교훈이 뭔지 생각거리를 주었다는 것이, 블로그에 일기쓸 거리가 생겼다는 것이 얻은 바라면 얻은 것일까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번 방학도, 이틀간의 서울 퀘스트도 '아무것도 아닌 일'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광주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등산을 했습니다. 학원에선 순진무구한 광주 학생들에게 서울대 이름을 팔아가며 저의 수리영역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갔지요. 어떤 일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에게 달린 일인 법, 지나간 일에 반성이 흘러넘친 자괴감을 가질 것까지야 없으니까요. 이마저도 자기합리화일 뿐이려나요.


  누구든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합니다. 같잖은 서울 나들이에도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저의 경우가 지나친 일반화는 아닐 것입니다. '역사' 그 자체가 과거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자 그 결과물이니까요. 어떤 사건에도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그 시간의 흐름에 끊임없이 말뚝을 박으려고 애쓰는 게 또한 사람입니다. '시간'은 단단한 토대가 아니라 흐르는 강과 같기에, 말뚝을 밖는 행위도 어찌보면 참 부질없지만, 그 몸부림 덕분에 문명이 생기고 인류가 여기까지 도달한 것이겠지요. 
  인류에 대한 수 많은 의미를 찾아주는 작업은 역사학자들을 비롯한 인문학자들이 도맡는 일이지요. 하지만 제 삶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저 하나짜리라, 그 의미를 찾는 일은 오롯이 제 몫일 수 밖에 없습니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가지는 몫이지만, 누구나 가진다고 쉬운 일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겠지요.
  괴악한 일기를 쓰다보니 슬슬 피곤해집니다. 잠이나 자러 가야겠어요.


  + 그래서 가끔씩은 종교가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자신의 의미를 신이라는 존재에 맡길 수 있을테니까요. 의심없는 믿음을 대가로 한 축복이지요. 절대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 결론은 '개강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입니다. 공부하라고 만든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의미가 뭐 어디에 있겠습니까; 허탈함에 못 이겨 사공이 에버랜드가는 글이나 배설하다가, '개강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자'같은 소리나 하고 앉아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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