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전 글/일기(2011~)

8월 21일 일상 후기


  집에 먹을 게 많습니다. 시리얼도 사 놓고 새우커리도 냉장고에 쟁여놓고 행복합니다. 사랑니를 안 뺐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까요. 순하게 났던 이빨이라 매정하게 내친 주인 무안하게 뻰찌질 한 번에 뽑혀나갔습니다. 붓지도 않고 하루 지나니까 딱딱한 것 먹는데도 아무렇지가 않더라구요. 다만, 잇몸 한구석에 혀를 대면 나는 피맛은 찝찝합니다.
  재수하는 후배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어떻게 도움되는 말이라도 해준답시고 찾아갔는데, 도리어 공부하는 애들 시간만 뺏은 건 아닌가 걱정됩니다. 카드를 찍어야 통과가 되는 재수학원에 들어가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저를 재수생C로 보고 아무 말도 없이 통과시켜 준 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 좋은 날에 학원에 틀여박혀 있는 후배들이 딱하기도 하면서도, 정작 이 소중한 시간을 할 일없이 보내고 앉아있는 저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고있는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친구들 듣기에는 정말 분에 넘친 소리이겠지요. 하지만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을 온 몸으로 보내는 것도 역시 행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재수생들과 함께 6월 모의고사가 쉬웠다니, 고등학교가 망해간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꽤 신선했습니다. 저로서는 버스의 인강 광고는 이젠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평가원이 이번 수능을 어떻게 내는지도 관심 밖이니까요.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지 고작 한 학기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더 이상 그 친구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가 없어졌습니다. 다행히 재수할 때 들었던 이러저러한 생각은 일기장에 조금이나마 적어두었습니다. 나중에 대학 1학년을 더듬기 위해 이 블로그의 포스팅을 찾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도 역시 지금을 살아가는 저를 잘 말해주기를 바라봅니다.
  무상급식 이야기가 많습니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과 민주당 시장이 같이 있는 작은 도시 광주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는 잉여1이었던 저는, 며칠 전 서울에 갔을 때 거리며 버스 코에까지 걸린 현수막을 보고 나서야 이 문제가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어제는 서울 주민도 아닌 제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투표 독려 문자도 왔더랍니다. 그리고 오늘은 서울시장직을 걸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말까지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정치에 대한 아무 이론도, 지식도 없지만 그래도 정치판은 보면 재미는 있습니다. 그 사안이 무엇인지를 떠나서, 대의제로 뽑힌 이미 시민들의 대표인 시장님께서 같은 대의제로 뽑힌 시의원님들과 싸움이 안 되니 멀쩡히 있던 주민들을 불러 서명을 하게 하고 주민투표를 끌고왔습니다. 그러더니 투표가 무산되면 시장직을 사퇴하신다네요. 들어올 때는 뽑혀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마음대로인건지, 수도의 시장직이라는 게 그렇게나 가벼운 업무인지, 투표 하나에 사퇴하니 안 하니 발표할만한 그런 업무를 하는 자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투른 제 눈으로는 다섯 살 그 분의 투정부림으로밖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전 투표 안 합니다. 말했다시피 서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투표가 무산되어 재보궐 선거를 치른다 해도 저와 제 부모님 세금은 안 들어갈테니 그것도 참 다행입니다.

'예전 글 > 일기(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 이용 후기  (0) 2011.09.01
개강 준비기  (3) 2011.08.25
이럴수가 배명훈씨 신작이다.  (0) 2011.08.20
8월 17~18일 비일상 후기  (2) 2011.08.18
8월 16일 일상 후기  (2) 2011.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