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들어와서 제일 좋은 점을 꼽으라면 저는 유익한 강연을 시간 되는대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을 들겠습니다. 몇 달 전 뇌과학 강연도 그렇고, 자비롭게도 주말에! 진행하는 5월 한 달간 진행하는 현대경제학 강연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대하던 대학생활, 그에 제일 맞아 떨어진 것이 바로 이런 '골라듣는 강연'이 아닐까 합니다.
4월 25일에, 황농문 교수님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 열중하기' 강연이 있었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여있던 포스터를 보자마자 득템하는 마음으로 수첩에 적어놓았습니다. 일단 뇌의 작용이면 알고 보자는 식이었고, 제가 집중력이 약한 편이라 특히 몰입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기숙사로 가져 온 몇 권 안되는 책들 중 끼어있던 책이 교수님의 '몰입'이었을 정도입니다.
교수님께서 하시던 연구 중, 정말 누구도 못 풀 듯한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 아무리 애쓰셔도 풀리지 않자, '내가 이것만 생각해보겠다!'라는 마음가짐으로 그 문제에 빠져들었고, 해결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주변 사람들은 '대체 어떤 비결로 그렇게 어려운 연구를 할 수 있었냐?'고 끊임없이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자신의 그 비결을 책으로 쓰셨습니다. 책의 제목은 '몰입'이라고 붙이셨습니다. 재료공학이 전공이신 교수님께서 얼떨결에 심리학과 뇌과학에 대한 책을 쓰시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교수님은 몰입 연구의 대가이신 미하일 칙센트미하이 박사도 만나며 몰입에 관해 연구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칙센트미하이의 조사와 연구에 의하면, 창의적인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몰입이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그 사람들이 몰입하게 된 동기는 다름아닌 '삶의 한시성', 즉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에 직면해서는 껍데기는 사라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평소 죽음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저에게는 그 말이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지금 당장 죽는다면, 지금껏 해온 일에 과연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저로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후회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셨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야지!'하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하루라니, 간단하지만 정말 힘든 일입니다. 제가 지금껏 산 365*21.xx일 중 정말 최선을 다해 산 날이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루하루 책 한장 보기도 쉽지 않은데, 매일 최선을 다하는 삶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거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스레 그날 밤에 후회가 밀려듭니다. '내가 왜 그 일을 대충했을까, 왜 그 때 자신있게 나서지 못했을까..' 좌절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상을 반복합니다.
교수님께서는 후회는 많이 할 수록 좋다고 하셨습니다. 얼핏 들으면 말이 안되는 소리지만, 후회를 많이 해봐야 후회를 두려워할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후회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후회할 짓을 하게 됩니다. 오늘의 후회는 내일의 발전이 되지만 인생 말년의 후회는 '답이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할 바에야 매일매일 후회하면서 발전하는 게 훨씬 바람직합니다. 후회를 겪을수록 후회를 두려워하게 되고, 후회를 두려워할수록 삶에 최선을 다 하게 됩니다. 강연을 들을 때는 정말 와닿았었는데 한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이제 와서 그 때 수첩에 적어놓은 내용을 보니 강연을 듣고서도 써먹지 않았다는 후회가 듭니다. 오늘 밤은 후회하면서 잠을 청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하시던 교수님이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매일 최선을 다짐하고 그렇지 않았음을 엄격하게 후회하는 일상. 정말 어마어마한 의지가 아니면 습관되기 어려운 일일 터입니다. 앞에서 강연하시는 교수님이 질린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저렇게 살아야 정말 후회없는 삶을 살겠구나 하는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강연을 하시는 교수님은, 제가 보기엔 분명 행복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구나 한 번 쯤은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것입니다. 저 역시 고등학생 때, 매일 반복되는 감옥같은 일상을 보내면서 행복과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결론내리기를 미뤘습니다. '행복은, 삶을 의미있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삶의 의미를 찾기 전에 먼저 의미있는 삶을 살아보자. 지금 삶에 의미는 고작 입시뿐이지만, 언젠가 의미있는 삶을 살다보면 분명 답이 나올테다.' 대충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결론을 유예한 채, 말장난으로 끝내고서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 행복에 대해 인용하신 말씀은 예전의 제 물음에 답이 되고도 충분한 말이었습니다. '정말, 이거다!'싶은 경구였습니다. '행복의 비밀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앞으로 삶에서도 새기고 싶은 명언이었습니다. 곧이어 교수님께서는, 그럼 내가 할 일을 좋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강연셨습니다. '능동적'으로 행동하라. 거창한 주제에 비해 쉬운 결론이었지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충 보낸 것만 같은 제 삶에서도 제가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해 한 일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만큼 행복한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삶다운 삶, 의미있는 삶은 능력의 한계를 발휘하고, 그 한계를 넓혀가는 삶이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행복한 삶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법입니다. 교수님은 능력의 한계를 발휘하는데 바로 몰입이 쓰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능력의 날개를, 푸른 하늘에 마음껏 펼친다면, 뒤돌아보면 한치 후회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행복과 의미있는 삶의 정의는 누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너무 한 일에 몰입하다가 건강이 나빠질 뻔도 하셨다던 교수님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워커홀릭으로만 보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도 '몰입하게 되면 결국 일상에 신경쓰지 않게 되는 것 아니냐?' 비슷한 질문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교수님의 답변은, '새 애인이 예쁘면 옛 애인을 버리는(;;;) 것 처럼, 몰입하는 삶에 대해 알게 되면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였습니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정신적인 경험을 하고, 그것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교수님이 부러웠습니다. '몰입하다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쓰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냐?'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몰입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비슷하다. 기반을 잘 다져놔야한다. 그러므로 몰입하기 전에 미리 대인관계를 돈독하게 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몰입할 수 없다.'고 답변하셨습니다. 자신은 가족들과 잘 지낸다는 귀여운 변명도 덧붙이셨습니다.
'몰입'을 읽으면서 느꼈던, 비록 강연장에서는 던지지 못했지만 저 역시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능력의 한계를 발견하는 일은 쉽게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정말 세상의 모든 일을 잊고 문제에만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일도 잊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것은 어찌보면 이기적인 일이 아닐까, 세상을 너무 좁게 사는 것은 아닐까요. 학교에서도 가끔 보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도서관 터널의 게시판에는 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호소하는 대자보가 항상 붙어있지만, 모두들 자기 일에만 바빠 보입니다. 잔인한 5월을 맞은 철거민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가까이는 대학의 등록금 문제까지, 이런 일들은 '소수의 몰입하는 사람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다수의 관심이 있어야만 풀어나갈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만 번지르르하게 풀어놓고 있는 저 역시, 문제의식마저 모호한 채로 제 일에만 집중한 채 살아갑니다. 저는 제가 제 능력의 한계를 넓혀가며 살고싶습니다. 학교의 대학원 건물을 볼 때마다 묘하게 뿌듯하고, 서점에서 제가 가고자 하는 길을 미리 가신 분들의 책을 보면, 조금 과장하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두근거리기도 합니다. 하짖만 이런 삶이 진실로 옳은지, 이런 사람들로 가득찬 세상이 과연 바람직한지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몰입 두번째 이야기에 대해서 강연시간에 잠깐 말씀하셨는데, 인터넷 서점에 보니 예약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블로그에 애드센스가 있으면 어울렸을텐데요, 그래봤자 방문객이 없으니 돈은커녕 지저분하기만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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