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전 글/견문

현대경제학비판 강연 후기


한줄 요약 : 이과생이 경제학은 무슨 화학실험 레포트 쓸 시간에 무슨 짓이야




   대한민국 7차교육과정을 이과생 정석 루트로 졸업한 저는 경제학은커녕 사회과학 쪽은 전혀 모릅니다. 관심있는 심리학이나 겉핥기식으로 읽어봤고, 그 역시 일반인들 호도하기 딱 좋은 책으로만 골라서 읽어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총학생회에서 윤소영 교수님의 현대경제학 비판 강연을 한다는 대자보를 보았을 때, 저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재밌는 강연을 하니 냉큼 들으러 가야겠구나.'와 '난 현대경제학을 모르는데 현대경제학을 비판하는 강연을 들어도 될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백지 상태, 미시경제와 거시경제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애한테, 다짜고짜 케인즈는 잘못되었다, 마르크스가 최고다 뭐 이런식으로 들이대면 또 아무것도 모른 채로 휩쓸려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강연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전반적으로 강연을 뒤쫓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일단 윤소영 교수님의 말씀 속도도 빠른 편이었는데다가 생소한 경제학 용어들이 확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햇볕 쨍한 일요일에 장장 6시간을 듣는 것도 힘들긴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남은 세 강의를 계속 들을어 다닐 생각입니다. 교수님의 생각이 옳든 그르든, 세상을 보는 전혀 새로운 시각에 대해 알았기 때문입니다. 매일 햄버거만 먹다가 김치전을 먹는 느낌이었달까요. 이왕 쓰는 것, 오늘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적어보고도 싶지만, 내용도 방대한데다가 기본 지식이 없으니 자신이 없습니다. 지식보다는 대충 느낀 점만 적어보겠습니다.
  경제학이니 마르크스니 하는 내용과 관계없이, 막힘없이 자신의 학문을 쭉쭉 얘기하는 교수님의 모습은 멋있었습니다.(평소 강의를 들을 때 교수님들을 보면서도 자주 느낍니다. 누구든 자신의 일에 파고드는 모습은 항상 멋있습니다.) 경제학이라면 분명 재미없고 탁 막힐 줄 알았는데, 술술 넘어간 것은 아니었어도, 처음 듣는 주제에 대해 6시간동안 주입되었는데도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교양으로 꼭 경제학을 들어야겠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다만, 정규수업이었다면 오랜 기간동안 체계적으로 익혔을텐데, 너무 한꺼번에 많은 걸 들어서 남는 건 별로 없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강연 전에 들었던 고민이 해결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이 강연의 내용이 주류이든 비주류이든, 무지한 제가 무비판적으로 따라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이것도 혼자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전화 통화 중에 '내가 너무 교수님 말씀을 받아들이기만 했구나.' 하고 퍼뜩 깨달아 느낀 점입니다. 이제는 정말 고칠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저는 권위에 눌려 제 의견을 죽이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생각없이 따라가곤 합니다. 제가 지금껏 한 공부가 이공계식 공부였기 때문이었다고, 소심하게 변명해봅니다.
   과학적 사실이 다른 진리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과학적인 근거로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성서의 해석이야 누구나 새로이 할 수 있겠지만, 누가 아미노산의 화학식 같은 데에 감히 태클을 걸겠습니까. 일단 사실로 판정된 과학적 사실은 오류가 나올 때까지는 잠정적인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확실해서 편합니다. 
  반면 사회학적 세계는 얘기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경제학 역시, 심지어 그 안에 수학적 모형이 있을지라도, 그것이 전부 옳다고도, 틀리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으악 수학이 틀릴 수 있다니 강연동안 수많은 학자들이며 그들을 따르는 학파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게도, 제가 떠오른 질문은 '그래서 누가 옳은거지?'였습니다. 아무도 옳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천하의 마르크스라고 해도 완벽하지는 않았겠지요, 마르크스가 빼먹은 부분을 폴리나 뒤메닐이 보충했다는 말씀도 있으셨으니까요. 앞으로도 '옳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곧 다원적인 의견이 존중받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케인즈주의니 마르크스주의니 신고전파니 새고전파니 마음껏 갈리고 논쟁이 서는 데는 그만한 토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연과학이 논쟁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논쟁이 없는 학문은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알아보고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그래도 무지한 저로서는 확실히 설 수 있는 배울만한 토대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달에 현대경제학비판 강연을 다 듣고, 겨울 계절학기로 광주에 내려가 경제학 원론이나 입문 강의를 듣는다면 좀 개념이 서지 않을까 싶습니다. (2학기가 아니라 계절학기입니다! 다른 학교에서 들으면 학점이 A에서 F까지로 나올지라도, 우리 학교에서는 합격/불합격으로 변환되기 때문입니다ㅋㅋ 고작 경제학에 대한, 전문적이지도 않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새롭다면, 앞으로 제가 알아야 할 공부는 얼마나 많을까요, 모르는 세계에 대해 정말 두루두루 배우는 것이야말로, 그래도 학자가 꿈인 사람의 의무이자 권리인 듯 합니다. 물론 제 분야야말로 깊게, 제대로 파고들어야 하겠지요. 세상엔 알아야 할 게 너무 많습니다. 살면서 할 일이 뚝 끊길 일은 없을테니, 그것 하나만큼은 기쁘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Modern Economy를 현대경제학으로 번역할지 근대경제학으로 번역할지, principle이 원론으로 번역되어서는 왜 안되는지에 대해 그리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영어 용어를 그대로 쓰면 어떨까요, 물론 일반 사람들의 접근이 힘들어진다는 면도 있겠지만,(그리고 저도 감히 경제학 강연 따위를 들으려 하지도 않겠지만) 너무 사소한 데에 집착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문계생이 미적분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혼란스럽습니다. '경영이나 경제를 듣지 않는 인문대생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 역시도 경영과 경제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조차도! 강연을 듣고 보니 경제학을 알면 세상 사는 게 더 다르게 보일 것 같습니다. 하물며 인문계생들은 어쩌겠습니까. 현실적인 문제로도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예전에는 수학문제 하나로 대학이 바뀌는 세상인데, 수학 힘든 건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수학 싫어 인문계 온 애들한테 너무 잔인한 건 아닌가 싶었는데, 경우의 수가 빠졌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으니....;;;;;


+제가 곡해에서 들은 것일지는 몰라도, '내년 대선에 민주당이 집권해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더 받아들여도 뽑아준 사람들로서는 할 말이 없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그렇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차라리 계속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말씀은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 같습니다. 지난 정권도 정말 많은 비판을 듣지 않았습니까. 그 비판이 전부 보수층에서만 나온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노대통령 시절, 그 분께서 '한겨레만큼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하는 이야기를 했겠습니까ㅠㅠ. 게다가, 현 정권에 수많은 비판이 일었을지언정, 그 비판이 제대로 수용된 적은 거의 없지 않았습니까. 같은 세력이 집권했다고 비판 세력이 없어질 것이라는 건 너무 사람들을 우민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값 등록금, 청소노동자들의 실상이 구조적인 모순이라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어찌보면 정말 평생을 바쳐도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이익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에도 순기능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경제학이며 운동권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세력에 투표하지 않을 수는 있을테니까요.
  구조적인 담론은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이라, 솔직히 저같은 대중들에게는 질려보입니다. 먹고 사는 일부터 바쁜 사람들에게, 특수 이익을 주장하지 않는 '시민'을 절대 가치로 두라는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생활에 관련된 일을 '특수 이익'이라며 더 일반적인 이익에 관심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그래도 상관없는 계층들뿐일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엘리트나 지식인에 대해 언급이 많으신 이유도 이와 관련되었을까요. 그렇다면 학문이 엘리트들의 전유물로 남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