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라는 책은 고3 때, 매주 토요일 발행되는 한겨례의 책 소개 기사를 읽고 알았습니다. 아마존에서 30년간 생활한 한 언어학자가 그 원주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슬슬 알아갑니다. 그러면서 지금껏 알고 왔던 촘스키의 보편문법을 부정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종교마저도 버리게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를 꽤 재밌게 읽어서 그 부분만 잘라 스크랩해두었습니다. 서점에 가서도 수능 끝나면 사서 읽겠다고 확실히 눈도장을 찍어놓았습니다.
출판계에 항상 일어나는 비극일지, 수능이 끝나니 판본가격이 올라있었습니다. 양장본 책이 2만원을 넘지 않았더라면, 책을 읽고 후기를 훨씬 빨리 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행히 학교 중앙도서관에 책이 있었습니다. 잉여로운 6월을 맞아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선교 활동을 위해 아마존의 피다한 부족과 생활합니다. 피다한 말을 익혀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목표랍니다. 책도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아마존의 활주로를 달리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활주로마저 저자가 오기 전에 선교하러 온 사람들이 건설했습니다. 선교를 위해 아마존 원주민들을 찾는다니, 무신론자인 저로서는 저자가 모험적이다 못해 이기적으로 보였습니다. 피다한 마을에 오게 된지 몇 달 되지 않아, 브라질은 선교사들을 받아주지 않기로 정책을 변경합니다. 저자는 피다한 마을에 있기 위해 지능적인(?) 방법을 궁리해냅니다. 브라질 대학에서 언어 연구 석사학위를 받아 피다한 주민들의 언어학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저자는 피다한 사람들과 오랜 시간 살을 부딪쳐가며 살고, 그들의 삶을 체험합니다.
광활한 아마존 강, 피다한 사람들과 다른 브라질 사람들의 모습은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습니다. 오랜만에 술술 넘어가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끝났으면 이 책은 단순한 기행문이나 선교 체험 책이 되었겠습니다. 하지만 책은 피다한 언어와 그들의 사고 방식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이야기합니다. 책에서 가장 진도가 안 나가는 부분이지만, 이 내용이야말로 다른 아마존 원주민들에 대한 책과 이 책이 다른, 이 책만의 가치가 되겠습니다.
피다한 족의 사고방식은 정말 독특합니다. 웬만한 SF나 판타지 작가들도 생각하지 못할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이를 '경험의 직접성'이라 이름붙입니다. 상상력을 인정하지 않는 피다한 족이 성경을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저자는 정말 열심히 예수를 전파하러 하지만, 번번히 실패합니다. 해가 지나다 보니, 도리어 피다한 족의 사고에 저자가 전도됩니다. 신 역시 자신의 문화 속 사고방식에서 나온 존재가 아닌지 되묻게 된 것입니다. 한 부족의 사고의 밑바탕이 되는 '경험의 직접성'으로는 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사진을 보고 이해하는 것처럼, 피다한 문화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언어마저도, 경험한 일만 이야기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피다한 족의 언어에는 여느 언어에나 존재할 법한 '안는 문장'이 없고, 수나 색깔을 나타내는 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휘의 부족이야 우리 말을 비롯해서 많은 언어에 나오는 '떡밥'입니다. 하지만 '안는 문장'이 없는 언어라니, 문법 자체가 '보편문법에 위배되는' 언어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보편문법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언어'가 인류의 특징이고, 진화의 결실이 되는 이유가 보편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티븐 핑커의 [언어 본능]을 통해 촘스키의 보편문법을 알았습니다. 언어는 인류 진화의 산물이며, 전 세계 언어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문법 체계가 이를 증명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맞춤법만 나오지 않으면 다행힌 비문학 지문밖에 몰랐던 고등학생에게는 보편 문법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인지과학을 하고싶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보편 문법과 맞지 않는 언어가 존재했다니요, 게다가 피다한 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거나, 알아내기도 전에 사라져버렸을 수 많은 언어들이 보편 문법에 맞지 않은 수많은 반례를 방증합니다.
물론 피다한 어도 다른 언어와 겹치는 공통점들이 많습니다. 주어-목적어-서술어 순서는 우리말과 일치합니다. 언어에 음소를 사용하는 것도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일테지요. 물론 '채널'이라는 게 존재해서 평상시에 말하는 방식과, 정글에서 휘파람 불듯 말을 하는 방식은 저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합니다. 말의 성조도 다양하니 한국인이 피다한 마을에 간다면 정말 열불이 나겠지만, 중국인이나 베트남 사람이라면 피다한 어를 더 빨리 배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편 문법이 부정당했더라도, 언어가 진화의 산물이고 사고의 과정이라는 것까지 부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큰 보편적인 법칙이 저자의 말마따나 '인식 방법'으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언어학에서 문화가 소외받아서는 안되며, 인류학이야말로 심리학보다도 언어와 가장 연관된 학문이라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어느 학문이 그렇듯, 독선적인 길을 걷다가 결국 모순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연구는 여러 방향에서 하나로 수렴되는 식으로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학문의 포함관계를 따지는 건 어찌보면 말놀이일 뿐이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심리학을 앞에 두고, 그 다음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문화 역시 환경에 대처하는 마음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 '환경'이 '세계화된 주류 문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분명 가장 가까운 문화조차도 제 상상 이상을 보여주겠지요. 이들을 다 설명하는 길이 심리학의 길이고,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생물학의 길, 과학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인류가 학문을 완성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듯합니다.
저자는 선교 활동을 위해 아마존의 피다한 부족과 생활합니다. 피다한 말을 익혀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목표랍니다. 책도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아마존의 활주로를 달리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활주로마저 저자가 오기 전에 선교하러 온 사람들이 건설했습니다. 선교를 위해 아마존 원주민들을 찾는다니, 무신론자인 저로서는 저자가 모험적이다 못해 이기적으로 보였습니다. 피다한 마을에 오게 된지 몇 달 되지 않아, 브라질은 선교사들을 받아주지 않기로 정책을 변경합니다. 저자는 피다한 마을에 있기 위해 지능적인(?) 방법을 궁리해냅니다. 브라질 대학에서 언어 연구 석사학위를 받아 피다한 주민들의 언어학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저자는 피다한 사람들과 오랜 시간 살을 부딪쳐가며 살고, 그들의 삶을 체험합니다.
광활한 아마존 강, 피다한 사람들과 다른 브라질 사람들의 모습은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습니다. 오랜만에 술술 넘어가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로 끝났으면 이 책은 단순한 기행문이나 선교 체험 책이 되었겠습니다. 하지만 책은 피다한 언어와 그들의 사고 방식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이야기합니다. 책에서 가장 진도가 안 나가는 부분이지만, 이 내용이야말로 다른 아마존 원주민들에 대한 책과 이 책이 다른, 이 책만의 가치가 되겠습니다.
피다한 족의 사고방식은 정말 독특합니다. 웬만한 SF나 판타지 작가들도 생각하지 못할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이를 '경험의 직접성'이라 이름붙입니다. 상상력을 인정하지 않는 피다한 족이 성경을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저자는 정말 열심히 예수를 전파하러 하지만, 번번히 실패합니다. 해가 지나다 보니, 도리어 피다한 족의 사고에 저자가 전도됩니다. 신 역시 자신의 문화 속 사고방식에서 나온 존재가 아닌지 되묻게 된 것입니다. 한 부족의 사고의 밑바탕이 되는 '경험의 직접성'으로는 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사진을 보고 이해하는 것처럼, 피다한 문화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언어마저도, 경험한 일만 이야기하게 만들어졌습니다. 피다한 족의 언어에는 여느 언어에나 존재할 법한 '안는 문장'이 없고, 수나 색깔을 나타내는 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휘의 부족이야 우리 말을 비롯해서 많은 언어에 나오는 '떡밥'입니다. 하지만 '안는 문장'이 없는 언어라니, 문법 자체가 '보편문법에 위배되는' 언어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습니다. 보편문법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언어'가 인류의 특징이고, 진화의 결실이 되는 이유가 보편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티븐 핑커의 [언어 본능]을 통해 촘스키의 보편문법을 알았습니다. 언어는 인류 진화의 산물이며, 전 세계 언어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문법 체계가 이를 증명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맞춤법만 나오지 않으면 다행힌 비문학 지문밖에 몰랐던 고등학생에게는 보편 문법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인지과학을 하고싶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보편 문법과 맞지 않는 언어가 존재했다니요, 게다가 피다한 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거나, 알아내기도 전에 사라져버렸을 수 많은 언어들이 보편 문법에 맞지 않은 수많은 반례를 방증합니다.
물론 피다한 어도 다른 언어와 겹치는 공통점들이 많습니다. 주어-목적어-서술어 순서는 우리말과 일치합니다. 언어에 음소를 사용하는 것도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일테지요. 물론 '채널'이라는 게 존재해서 평상시에 말하는 방식과, 정글에서 휘파람 불듯 말을 하는 방식은 저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합니다. 말의 성조도 다양하니 한국인이 피다한 마을에 간다면 정말 열불이 나겠지만, 중국인이나 베트남 사람이라면 피다한 어를 더 빨리 배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편 문법이 부정당했더라도, 언어가 진화의 산물이고 사고의 과정이라는 것까지 부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큰 보편적인 법칙이 저자의 말마따나 '인식 방법'으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언어학에서 문화가 소외받아서는 안되며, 인류학이야말로 심리학보다도 언어와 가장 연관된 학문이라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어느 학문이 그렇듯, 독선적인 길을 걷다가 결국 모순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연구는 여러 방향에서 하나로 수렴되는 식으로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학문의 포함관계를 따지는 건 어찌보면 말놀이일 뿐이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심리학을 앞에 두고, 그 다음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을 관찰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문화 역시 환경에 대처하는 마음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 '환경'이 '세계화된 주류 문화'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분명 가장 가까운 문화조차도 제 상상 이상을 보여주겠지요. 이들을 다 설명하는 길이 심리학의 길이고,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생물학의 길, 과학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인류가 학문을 완성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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