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이라는 터키 작가에 알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내 이름은 빨강'을 읽었습니다. '술탄 시절 이스탄불이 배경' + '추리소설' + '매 장마다 달라지는 시점' - '그 해 노벨 문학상(권위는 재미에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으로,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순수 박물관이 나온 건 몇 해 전이었을 것입니다. 파묵은 분명 좋아할만한 작가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작품을 다 찾아 읽을만한 작가도 아닌 것 같아 별 관심없이 신문에 나온 기사를 훑고는 말았습니다. 그러던즉 몇 주 전, 점 세계문학전집 코너에서 순수 박물관과 마주쳤고, 책을 들었습니다. 손에 든 책은 곧 읽는 책이 되었습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두 권이라, 서점에서 읽기엔 좀 부담스러운 분량이긴 했지만, 며칠 서점을 왕래하다 보니 소설도 끝을 보았습니다. 책을 다 읽고서는 사람들이 오가는 터미널의 풍경마저 보고싶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면 책의 여운도 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감상 후기인만큼 책 내용이 들어갑니다. 여기까지 읽고 혹시라도 책에 관심이 생기신 분이 계신다면, 서툰 이 감상글보다는 순수 박물관 책 자체를 추천하겠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읽기 충분한 책입니다. 저는 신문 기사에서 줄거리를 다 보고 읽었어도 재미있게 읽긴 하였습니다. 어제 썼듯, 문장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움과 집착으로 뭉쳐있어 그 문장을 느끼는 맛이 있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일지언정,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설이든 영화이든, 아무것도 모른채 기대만으로 접할 때야말로 그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을 다 읽었을 때야 비로소 찡해지면서, 왜 파묵이 '나는 이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요 며칠 서점에 쭈그려 순수 박물관을 읽으면서는 그저 가볍게 '주인공 개객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순수 박물관이라는 이 책과, 이스탄불 어딘가에 존재하는 순수 박물관까지 합친 이 모든 것이 주인공 케말이 독자에게 내뱉은 마지막 문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특히 독자의 눈으로 본 케말의 삶은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삶일 것입니다. 케말의 인생은 책 뒷면에 다 까발려진 줄거리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으로 간단하게 압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해 보았습니다. 책 두 권의 섬세한 내용을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 책의 재미는 문장 하나하나마다 녹아있습니다. 저 재밌으라고 쓰는 글이지만, 뭔가 죄를 짓는 일을 행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려;)
이 남자의 삶은 한 여자에게 모든 것을 던진, 허무하기 그지없던 삶이었습니다. 스크롤 압박이 좀 있을 요약글을 읽으면서 저 남자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되는 제 블로그 방문객 중에서라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기 직전, 남자는 자신의 삶이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죽기 전에 자신의 삶이 행복했었다고, 후회하지 않을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문장을 보고, 책을 덮고서야 느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케말의 삶이, 지독했던 그 삶이 부러워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사랑할 수 있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을 사랑하며 평생을 보냈으니까요. 세상에 몇 명이나 그런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케말은 이기적인 주제에 서툴고, 게다가 유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케말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겠지요. 평생을 바쳐 사랑한 퓌순에게조차, 그는 퓌순을 자기 입장에서 한 없이 원하기만했지, 퓌순이 무엇을 바랐는지조차 헤아리지 못해 결국 행복의 절정에 이르기 직전, 그를 잃고 말았습니다. 퓌순을 향한 그의 삶은 오롯이 그 자신을 향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퓌순에게 바친 30년은 결국 자신에게 끔찍하게도 충실했던 30년인 셈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행복한 삶이었겠습니까.
박물관을 만든다는 생각마저도, 자기애의 소산이나 다름없었지요. '수집'은 편도행 티켓마냥 한 곳으로만 흐르는 사랑입니다. 우표를 아무리 정성스럽게 모은다고 그 우표가 수집가를 사랑하지 않듯 말입니다. 수집이야말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취미이고, 박물관은 그 취미의 결정체이니까요. 10년동안 퓌순을 바라보았고, 20년동안 퓌순의 흔적을 쫓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였으니, 케말은 행복할 만합니다.
연애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케말이 한 사랑이 꽤 독특한 부류라는 건 알 만 하겠습니다. '집착'은 흔하지만, 그게 30년을 넘어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퓌순 역시 10년동안 케말을 사랑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케말은 처음으로 마음을 허락한 남자였고, 케말의 약혼식때 그만큼 상처받은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9년동안 케말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기에, 케말의 퓌순에 대한 사랑 역시 지독하게 깊어만 갔습니다. 결국 케말의 손에 들어온 퓌순은 영원히 여운으로 남게 되었구요, 그것이 케말이 20년을 박물관을 만들며 살아가게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약혼식 이후 퓌순이 케말과 계속 만났다면, 이 둘의 관계는 1년도 안 되어 깨졌을지도 몰라요, 케말의 성격에 그랬을 것입니다. 케말 입장에서는 정말 감질나던 8년의 세월 후 둘의 결혼이 성공적이었다면, 둘은 5년도 안 되어 이혼 소송을 걸었을 지 누가 알겠습니까. 퓌순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퓌순이 없었기에 30년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소설에 만약이라는 것도 웃기긴 합니다. 애초부터 둘은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파묵이 이 소설에서 쓴 건 케말의 사랑이지만, 동시에 사랑 자체에대해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케말은 진심으로 퓌순을 사랑했습니다. 안정된 미래, 상류사회의 지위, 무엇보다 자신의 8년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퓌순에게 바쳤지요. 하지만 그에게 한 번 버림받았던 퓌순은 그에게 몸도, 마음도 쉽게 주려 하지 않았기에, 8년 동안 퓌순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케말의 마음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대신 채우는 것은 퓌순의 기억이 남은 물건들 뿐. 케말은 하나하나 물건들을 모으지만, 그 주인이 없는 물건들은 아무리 모아도 케말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퓌순이 원하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은 후에야, 퓌순에게 속했던 물건을 다 가진 후에야 케말은 물건들을 자신의 품에서 놓아줍니다. 박물관은 안으로만 향해있던 수집의 욕구를 '전시'라고 하는, 밖으로 향하는 욕구로 승화된 공간이니까요. 애틋하면서도 얄밉고, 불행한 듯 하면서도 행복한 끝입니다.
터키는 가고싶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순수 박물관을 읽고, 가서 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감상 후기인만큼 책 내용이 들어갑니다. 여기까지 읽고 혹시라도 책에 관심이 생기신 분이 계신다면, 서툰 이 감상글보다는 순수 박물관 책 자체를 추천하겠습니다. 시간을 들여서 읽기 충분한 책입니다. 저는 신문 기사에서 줄거리를 다 보고 읽었어도 재미있게 읽긴 하였습니다. 어제 썼듯, 문장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움과 집착으로 뭉쳐있어 그 문장을 느끼는 맛이 있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일지언정, 그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설이든 영화이든, 아무것도 모른채 기대만으로 접할 때야말로 그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을 다 읽었을 때야 비로소 찡해지면서, 왜 파묵이 '나는 이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요 며칠 서점에 쭈그려 순수 박물관을 읽으면서는 그저 가볍게 '주인공 개객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순수 박물관이라는 이 책과, 이스탄불 어딘가에 존재하는 순수 박물관까지 합친 이 모든 것이 주인공 케말이 독자에게 내뱉은 마지막 문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행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특히 독자의 눈으로 본 케말의 삶은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삶일 것입니다. 케말의 인생은 책 뒷면에 다 까발려진 줄거리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
으로 간단하게 압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해 보았습니다. 책 두 권의 섬세한 내용을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앞에서 말했듯,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 책의 재미는 문장 하나하나마다 녹아있습니다. 저 재밌으라고 쓰는 글이지만, 뭔가 죄를 짓는 일을 행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려;)
이 남자의 삶은 한 여자에게 모든 것을 던진, 허무하기 그지없던 삶이었습니다. 스크롤 압박이 좀 있을 요약글을 읽으면서 저 남자가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되는 제 블로그 방문객 중에서라면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죽기 직전, 남자는 자신의 삶이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죽기 전에 자신의 삶이 행복했었다고, 후회하지 않을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문장을 보고, 책을 덮고서야 느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케말의 삶이, 지독했던 그 삶이 부러워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사랑할 수 있던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을 사랑하며 평생을 보냈으니까요. 세상에 몇 명이나 그런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케말은 이기적인 주제에 서툴고, 게다가 유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케말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겠지요. 평생을 바쳐 사랑한 퓌순에게조차, 그는 퓌순을 자기 입장에서 한 없이 원하기만했지, 퓌순이 무엇을 바랐는지조차 헤아리지 못해 결국 행복의 절정에 이르기 직전, 그를 잃고 말았습니다. 퓌순을 향한 그의 삶은 오롯이 그 자신을 향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퓌순에게 바친 30년은 결국 자신에게 끔찍하게도 충실했던 30년인 셈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행복한 삶이었겠습니까.
박물관을 만든다는 생각마저도, 자기애의 소산이나 다름없었지요. '수집'은 편도행 티켓마냥 한 곳으로만 흐르는 사랑입니다. 우표를 아무리 정성스럽게 모은다고 그 우표가 수집가를 사랑하지 않듯 말입니다. 수집이야말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취미이고, 박물관은 그 취미의 결정체이니까요. 10년동안 퓌순을 바라보았고, 20년동안 퓌순의 흔적을 쫓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였으니, 케말은 행복할 만합니다.
연애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케말이 한 사랑이 꽤 독특한 부류라는 건 알 만 하겠습니다. '집착'은 흔하지만, 그게 30년을 넘어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퓌순 역시 10년동안 케말을 사랑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케말은 처음으로 마음을 허락한 남자였고, 케말의 약혼식때 그만큼 상처받은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9년동안 케말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기에, 케말의 퓌순에 대한 사랑 역시 지독하게 깊어만 갔습니다. 결국 케말의 손에 들어온 퓌순은 영원히 여운으로 남게 되었구요, 그것이 케말이 20년을 박물관을 만들며 살아가게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약혼식 이후 퓌순이 케말과 계속 만났다면, 이 둘의 관계는 1년도 안 되어 깨졌을지도 몰라요, 케말의 성격에 그랬을 것입니다. 케말 입장에서는 정말 감질나던 8년의 세월 후 둘의 결혼이 성공적이었다면, 둘은 5년도 안 되어 이혼 소송을 걸었을 지 누가 알겠습니까. 퓌순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퓌순이 없었기에 30년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소설에 만약이라는 것도 웃기긴 합니다. 애초부터 둘은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파묵이 이 소설에서 쓴 건 케말의 사랑이지만, 동시에 사랑 자체에대해 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케말은 진심으로 퓌순을 사랑했습니다. 안정된 미래, 상류사회의 지위, 무엇보다 자신의 8년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퓌순에게 바쳤지요. 하지만 그에게 한 번 버림받았던 퓌순은 그에게 몸도, 마음도 쉽게 주려 하지 않았기에, 8년 동안 퓌순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케말의 마음을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대신 채우는 것은 퓌순의 기억이 남은 물건들 뿐. 케말은 하나하나 물건들을 모으지만, 그 주인이 없는 물건들은 아무리 모아도 케말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퓌순이 원하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은 후에야, 퓌순에게 속했던 물건을 다 가진 후에야 케말은 물건들을 자신의 품에서 놓아줍니다. 박물관은 안으로만 향해있던 수집의 욕구를 '전시'라고 하는, 밖으로 향하는 욕구로 승화된 공간이니까요. 애틋하면서도 얄밉고, 불행한 듯 하면서도 행복한 끝입니다.
터키는 가고싶은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순수 박물관을 읽고, 가서 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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