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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견문

짤막한 '요놈을 어떻게 읽나'감상후기



  How to read시리즈는 잘 사서 잘 읽고 있습니다. 진도라고는 등교길 오르는 지렁이마냥 꿈틀거릴 줄만 알았는데 다행히 학교가 딱정벌레 학교라도 되었나 봅니다. 주말을 놀렸는데도 4분의 1은 읽었습니다. 16권 중 4권을 읽었으니까요. 두 시간(30분 읽고, 30분 자고, 1시간 읽으면 끝)이면 한 권을 독파할 수 있었습니다. 지렁이에게 눈이 없듯, 다 읽었다고 내용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서도요. 각각 읽은 내용에 짤막한 감탄사 달아본다면 이렇습니다.

키르케고르 : 뭥미
푸코 : 흐음
사드 : 어허험
성경 : 호오

  키르케고르는 읽으면서도 대체 왜 이 분이 실존주의고 포스트모더니즘이고 무슨 영향을 미친건지.. 하는 망령된 생각을 품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사상태에서 페이지를 넘기며 익명이 그렇게 중요한건지, 아니면 덴마크 사람들은 햄릿마냥 행동보단 딴생각이 많은건지 고민했습니다. 이런 블로그에 설마 키르케고르를 전공하시거나, 좋아하셨거나, 조금이라도 책을 읽으신 분들이 오실래야 없으시겠지만, 설사 오셔서 이런 글을 본다고 해도 화를 내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박물관 한가운데에서 칭얼거리는 꼬마애를 시끄럽다고 싫어할 분은 있어도 작품의 뜻을 몰라본다고 노여워하실 분들은 없으시지 않겠습니까.

  그에비하면 푸코는 그나마 나았습니다. 같은 93년생이라도 대학생으로 분류된 동기 누구와 고삼 학생으로 분류된, 한 때 과외를 했던 누구는, 그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후에도, 다른 정체성으로 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겠지요. 이렇게 쓰고 있어도 제가 제대로 된 예시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책 읽고 주말이 지나가니 내용을 다 잊었어요. 하하하핫, 그래도 만약 방학 내에 책을 더 사게 된다면, 그 책중엔 감시와 처벌이 끼어있을 겁니다. 신간도 아닐테니 할인도 많이 해주겠지요.

  사드는 재밌었어요. 키르케고르와 푸코를 읽고 난 다음 잡은 책이라서 그런지 정말 재밌게 읽긴 했는데........... 사디즘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만했습니다. How to read시리즈답게, 해석자의 착한 설명이 붙지 않았더라면, 저도 18세기에 사드를 가두었던 사람들, 소돔 120일에 검열딱지를 붙였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사드를 평가절상했을 것입니다. 오오오 작가와 시대를 떼어놓고서는, 특히나 사드의 책을 완벽하게 감상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13년동안 감옥에 갖히면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사상이 불순하다는 죄로 갇히셨던 어느 분께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쓰셨다면, 검열에 삭제될만한 내용을 써서 갇히셨던 이 분이 소돔 120일을 쓰는 것도 어울릴 법한 일일까요, 두 권 다 안읽어봐서 모르겠습니다.

  성경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점에 가서도 종교쪽은 얼씬도 하지 않는, 목사님 글보다는 과학자님글을 훨씬 많이 읽을 제 삶에 신학자가 해석해주는 성경은 퍽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스랖에 자주다니는 저는 기독교의 안 좋은 면만 많이 보아왔을 뿐이지, 성경의 의미나,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잘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욥기의 욥이나, 키르케고르처럼 신의 비합리성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큰 상상력을 가져 남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는 성경의 도구적 이용에는 수긍이 갔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동정심을 행할 수 있다면, 윤리학이 인간의 힘으로 완성되기 전까지는 분명 사회에 이익이었겠지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머리로는 온갖 반례로 대꾸 할 수 있어도,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지 어떡하겠습니까.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의미를 여전히 불완전한 윤리 목적의 대안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현대사회의 윤리는 신 없이도 꽤 볼만한 수준은 되었다 할 수 있을까요, 전도 대신 장사라는 말이 헛나오는 요즘의 교회는 신이 윤리를 대신할 수 있다 말할 자격이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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