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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견문

고3 플래너 관찰 후기.

  수능 때 썼던 플래너를 꺼내본다. 섬유로 된 표지 뒷면에 매직으로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10학번, 내가 1기임. 난 평생 대학에서 살테다’라고 적혀있다. 뇌인지과학과 가 학부인 줄만 알았던 시절이다. 옆 건물 학부생인 나는 10학번이 아니라 11학번이 되었고, 그나마 대학원은 15학번 이상으로 가게 될 것이다.


내 장점은 좋아하는 일에 결국 미칠 수 있다는 것. 뭐든 관심만 가진다면 좋아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라는 문구가 있다. 내게 물어본다. 나는 좋아하는 일에 미칠 수 있나? 지금은 대답할 수가 없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나.


초등학생 때, 학원 문에 들면 꼭 느꼈던 긴장감. 그러면서도 ’난 긴장을 즐기니까!‘라고 했는데, 이제 진짜 그때 길렀던 의연함을 쓸 때가 되었다


수능 보기 몇 주 전에 쓴 것 같다. 그 땐 참 수능이 전부인 줄만 알았다. 지금의 난 뭘 삶의 전부인 줄만 알고 살아가나. 긴장감 느끼던 학원 문은 어느새 할 일 없으면 찾아가는 피서지가 되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감상문과 Kent의 Sundance Kid 가사를 같이 적어놓았다.


‘자유 의지란 건 10대 때의 꿈이었지만, 우린 그저 본능적인 동물이었고, 이 모든 게 다 거짓이었어.


새벽 세 시에 ‘선댄스 키드’를 들으며 내일 수업을 걱정하는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본능’에도 쏠리지 못하고 ‘자유의지’에도 치우치지 못한 채 허무한 꿈만 꾸고 있을 뿐이라는 것. 그러고보니 나도 아직 10대다. 그래서 트랙은 계속된다.


수험생활 찌들었어도 감수성은 대단했구나.


그러고보니 저 노래가 있었던 앨범 다음 트랙 가사도 참 주옥같았었다.


CD를 서울에 두고 왔다. 요새는 Kent노래를 잘 듣지 않는다.


U2앨범 No line on the horizon 후기가 4번 트랙까지만 적혀있다. 나중에 쓰려다가 그만뒀나보다.


고쳐야 할 수학 실수. 이건 재수 때 ‘완성’했다. 대학 와서는 새로 만들어 학생수첩에 적었다.


외워두면 좋은 수학 식. 역시 재수 때 ‘완성’했다.


300일 후의 나에게

진지한 글일 줄 알았는데, 잠 와서 쓰기 시작한 글이다. 수정테이프로 지운 자국에 잉크자국이 묻어나있다.


240일 후의 나에게

‘240여일만 지나면 여기 떠나고, 그럼 그 곳엔 존경하는 교수님이 계실테고, 이상에 마음을 넘긴 학생들이 있을 거고, 그럼 나도 거기서 교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고, 내 뜻대로, 도서관에도, 거리에도, 바다 너머도 갈 수 있을테고, 글도 손 가는대로 쓸 수 있고.

지금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교수님을 존경할 수도 있고, 명함만 바뀐 선생으로 알게 될지도 몰라. 아주 영원히.

나라 걱정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고3은 한 번 뿐이고.

사람 갖고 하는 연구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을 이겨내야 할 수 있는 거고‘


대학을 바라보는 한 없이 순진한 고3의 글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나는 한 없이 순진하다.

비록 가까워지지는 못했지만, 존경할 수 있는 교수님들은 다행히 만날 수 있었다.

사람 갖고 하는 연구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을 이겨내야 할 수 있는 거고

사람 갖고 하는 연구를 할 때도 그 때를 이겨내야 하겠지만

‘변함없는 진리는, 나는 과거의 내가 항상 부끄럽다는 거다.

어차피 부끄러워질 나라도, 최대한 덜 부끄럽도록 나를 내게 잘 보여야 한다.

과거의 내가 어쨌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까.

쪽 팔린 건 그렇다 쳐도 후회는 하지 않게 만들어야지‘


미래의 나를 향해 쓴 글이라 그런가. 제일 와 닿는다.

고등학교 때나 재수 때는 자주 하던 생각이었는데, 요새는 통 내가 나 보기에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라리 2년 전이 더 나아 보인다. 이런 내가 또 몇 년 후에 부끄럽게 느껴지길 바란다.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필요하다.

남이랑 비교해서 더 잘나면 생기고 못나면 사라져 끝없이 초조해지게 만드는

그런 싸구려 자존심이 아니라 진실로 나를 믿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럴려면 그만큼 내가 믿음직스러워야 되겠지.

믿음직해지자. 누구보다 나한테 떳떳한 사람이 되자‘


이 학교에 다니면서 생긴 건 자신감이 아니라

학벌을 주고 산 싸구려 자존심이었다.

여전히 자신감이 필요하다.

수능 끝나고 할 일. vol 2

거짓 절반이 책 읽기다. 역시 책은 시간 없을 때 더 잘 읽히나 보다.


How to read 책 다 읽기’가 있다. 요즘 50% 할인하던데, 일자리가 생기면 사야겠다.

선모-채미 SF 제대로 쓰기 : 고3때 쓰던 병맛 SF가 있었다. 당연히 주인공은 친구들이었다.

친구한테 책 돌려받기 : 그러고보니 잊고 살았다.

맘에 드는 놈 골라 피규어 만들기 : 작년에 오비완 캐노비로 성공했었다.

올해도 해 보고 싶은데 맘에 드는 놈이 없다.

친구에게 사과하기 : 무슨 사건이었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공개 강연 참석하기 : 교내 강연은 많이 찾아다녔다.

족제비 기르기 : 언니 강아지를 보면서 느끼는 건데, 애완동물은 키울 것 아니다.

반려동물이라면, 내가 자격이 없어보인다.

해바라기 키우기 : 이유를 모르겠다.

치약을 문질러 그림그리기 : 재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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