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를 시골에 보냈습니다. 집에서 콩물장사라도 하냐고 물으신다면, 두부는 전에 집에 살던 말티즈 이름이라 답하겠습니다. TV 동물농장에 나오는 천하의 나쁜 사람들이 남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두부는 어느날 우리집에 왔습니다. 원래 언니의 강아지였는데, 언니가 동물을 기를 수 없는 오피스텔로 이사하면서 광주 집으로 보내왔습니다. 부모님은 맞벌이인지라 당시 고3이었던 저보다도 늦게 오시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동물이 애정을 받으며 살기엔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환경이 평균 이하였어도 같이 사는 사람들이 평균 이상이었다면 평균에 가깝게 수렴했을텐데, 같이 살아온 사람들 점수도 높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두부 판단은 어땠을 지 모르겠습니다. 개를 처음 키워보는, 그것도 바라지 않던 개를 키우는 집 사람들이 개를 바람직하게 키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두부는 세 살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여전히 똥오줌을 가리지 못했습니다. 서열은 집의 최고 어른이라 생각했는지, 적어도 저는 아래에 있었습니다. 재수 때는 코를 물어뜯겨 한동안 코에 메디폼을 붙이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두부를 결국 시골에 데려다 주기로 한 데에도 '메디폼이 들어갈 일'이 또 생겼기 때문입니다. 민감한 사람이었다면 짧은 바지는 못 입게 되었을 것입니다. 물리는 일이야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물어뜯긴 일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두부도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도시의 집보다는 시골이 나을거라면서 두부를 보내기로 마음먹으셨습니다.
두부를 시골에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두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그리움보다는 죄책감이 훨씬 큽니다. 그래서 찝찝합니다. 뭐 이런 것까지 써야하나 싶으면서도 '일상의 후기'니까 오늘 벌어진 일은 쓰겠다는 생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결국 대부분이 변명인 것 같아 거시기합니다. 두부를 키우는 건 제가 아니라 어머니셨습니다. 그렇기에 괜한 고집을 피우는 일이 재수생보다 더 늦게 오시는 어머니께 더 큰 죄가 되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치졸한 변명은 '두부는 내가 원해서 키운 개가 아니잖아'가 될 겁니다. 결국 저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평생 애완동물은 키우지 않으렵니다. '반려동물'이라는 말 역시 사람이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은 변명거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유기견들을 모아 키우시는 많은 분들 께는 괘씸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런 유기견들마저 책임감 없는 사람들에게는 '반려동물'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불렸겠지요. 애초부터 동물을 키우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아이들입니다. 인간은 인간이 키우는 동물들을, 그걸 먹든 먹지 않든, 철저하게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하게 만듭니다. 무서운 종족입니다. 제 죄책감을 인간 종 전체로 돌리는 저는 인간 종 안에 있지만 무섭기보다는 안쓰럽습니다.
돌아와서는 영풍문고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서점이 팔아주고 싶은 책' 코너에 '그녀를 보낼 수가 없었다'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서래마을 영아살해사건의 당사자 남편이 쓴 책이었습니다. 분량도 짧아서 그 자리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임신거부증'이라는 병 말고도, '우리가 범죄자에게 느끼는 시선'이 얼마나 몰려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식 세 명을, 그것도 이제 막 태어난 핏덩이를 죽인 사람이면 누구나 두 말 할 것 없이 인간 쓰레기라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이해 못 할 상황 안에서도 사정이 있는 법임을, 그 책을 보고서야 헤아려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다방면의 시각을 갖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개인은 아집으로 가득 찰 것이고, 무리는 전체주의에 빠지게 되겠지요. 설사 그것이 살인같은 끔찍한 일일지라도요. 법정에서 정신병이 있는 사람을 무죄로 석방해주는 것도 수긍이 갑니다. 죄인의 사정에 따라 죄가 감해진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영아살해사건의 가해자인 아내 역시 8년형을 선고받았다가 조건부 석방으로 4년만에 돌아왔으니까요. 이들 부부가 죽은 아이들을 위해 처음 한 일도 아이들을 위한 무덤을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 남편이 쓴 책이기에 편향되어 있을테고, 심지어는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대필 작가를 고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제가 느낀 바가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의 가치는 그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다음 읽은 책은 이영도의 '그림자 자국'입니다. 분량이요? 확실히 서점에 쭈그려 앉아 읽기에 목이 걱정되는 두께였지만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읽었습니다. 실은 일주일 전 주말을 드래곤 라자로 보냈거든요. 드래곤 라자 전체를 이틀만에 해치웠다는 이야기를 이 블로그에 썼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요. 퓨처 워커는 월,화요일에 다 보았습니다. 이제 이 폭풍독서도 끝을 보았습니다. 마시는 새 시리즈요? 눈물을 마시는 새는 오래전에 읽었습니다. 피를 마시는 새라면, 아직은 별 생각이 없지만 이번 방학 안에 볼 확률도 적지 않겠습니다.
타자가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해내는지부터가 신기합니다. 캐릭터성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세계를 이토록 독자는 생각도 못할 방식으로 끌고 갈 수 있는지, 거기에 드래곤 라자 세계관에 대한 팬서비스까지... 다른 책들에 비해 소설은 잘 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설이라면 박스채로 갖다 줘도 읽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파묵의 순수 박물관 2권을 80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그림자 자국의 몰입이 그 세계를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범위를 비트는 데 있었다면 순수 박물관은 그 집요함에 읽게 됩니다. 1인칭 주인공의 문장 하나하나가 집착의 결정체이니, 내용을 뻔히 다 알면서도 읽게 됩니다. 노벨 문학상 작가는 연애소설(?)마저 비범합니다. 터키에 간다면, 순수 박물관을 꼭 보고싶습니다.
이번 한 달 무료통화를 써버리려고 친구와 통화하며 광천터미널에서 집까지 걸어왔습니다. 다 못 쓰고 한 시간은 남은 채 12시가 지났습니다. 아까운 무료통화, 아까운 무료문자. 광주에서 노트북에 wi-fi 핫스팟을 쓰지 않았더라면,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아까워서 땅을 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쓰는 메신저란 메신저는 다 받아놓았으니, 문자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통화는 어떻게 써버릴 지 애매합니다. 정말 친구 말마따나 남친이라도 구해야 할까요.
그림 카테고리의 포스팅은 블로거의 잉여도와 비례합니다. 자기 그림을 누가 보라고 올리는 것 자체가 무슨 배짱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따지고 올라갈수록 블로그의 존폐 자체가 흔들리니 생각은 그만두겠습니다. 결국 저 재밌으니 하는 블로그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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